부모 모두 돌아가셨으니 이제 죽음의 순번이 나에게 왔구나. 십년 전 홀로 남은 어머니마저 작고하자, 장녀인 그는 자신이 마침내 죽음의 순번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가 아닌, 당사자로서 죽음이나 소멸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사실 그는 이미 그 몇 해 전에 60대 여성 세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려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자꾸 우울하고 어둡고 무력한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죽음이란 자신의 삶이 아닌 어머니의 삶으로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과연 어떻게 소멸되어 갈까. 소설가 은희경은 사람이란 태어날 때부터 몸을 갖고 살아가기에 몸을 통해 인생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어떻게 나아가고 상처가 되며, 또 어떻게 회복이 되고, 결국 그 사람이 되는지를. 이렇게 생각하자 소멸이나 죽음을 맞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더 들어왔다.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장편소설 작업에 매달렸다고, 그는 기억했다.
“장편은 오래 생각해야 됩니다. 어떤 사건을 쓴다면 더 속도감 있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간의 추이를 보는 내용이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지 않으면 원하는 얘기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그 내면들로 얽힌 현대 사회의 모습을 냉철한 시선과 치밀한 문장으로 묘파해온 중견 작가 은희경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몸’이라는 프리즘으로 노년에 다다른 두 자매의 모습을 통해 우리네 삶을 찬찬히, 그러나 깊이 있게 들여다본 장편소설 『시간의 감촉』(문학동네)을 들고 돌아왔다.
잡지 『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부터 이듬해 가을호까지 연재를 한 뒤 숙고의 시간을 거쳐 다듬어 펴낸 작품으로, “발견과 성장의 여정”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첫 장편 『새의 선물』과 『빛의 과거』를 잇는 ‘시간 3부작’이라 부를 수 있겠다.
“일단 하루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일과라는 게 있다. 그 과정을 수행하는 것은 몸이다. 몸을 통해 자신의 바깥과 소통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유기체의 숙명이다. 생명이 있는 한 계속되어야 한다…. 몸에 관한 한 타인은 결코 개입하지 못한다. 남이 볼 때 남루하든 비참하든 한심하든 몸의 당사자에게만 유일하게 감각되는 고유의 삶인 것이다.”(13~14쪽)
각각 이른 1월생과 12월생인 언니 안나와 동생 경선은 자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성격도 외모도 제 각각으로 서로에게 무심한 채 예순다섯이라는 나이를 맞는다.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는 한 만나지 않는 자매는 경선의 신장에서 종양이 발견되면서 뜻밖에 병원에서 조우하게 된다.
안나는 예정에 없던 경선의 보호자가 되고 동시에 경선의 손자 다니엘까지 돌보게 되면서, 두 자매는 잊고 지내던 과거를 하나둘 떠올리며 서로를 깊이 알아가게 된다. 경선의 출생과 백일 사진 촬영 날, 소식이 끊어진 이웃들과 친척 어른들, 안나가 오래 전 안나푸르나에 여행을 갔을 때 만나게 된 남자와의 미묘한 관계, 그리고 경선이 죽은 전 남편 P와 결혼하게 되기까지 과정과 이후 결혼 생활….
안나와 경선, 경선의 손녀 다니엘은 온천과 항구도시로 알려진 이국으로 근거리 해외여행을 떠나고, 이곳에서 ‘우리의 첫’ 게임을 같이 하게 된다. 세 사람은 ‘나의 첫사랑’, ‘나의 첫 선생님’ 등 과거의 내밀한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하여 여행지에서 돌아온 안나와 경선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서로의 기억들을 마침내 소용돌이처럼 펼쳐보이게 되는데.
“한 사람의 몸 안에는 수많은 장소와 시간이 들어 있다. 몸은 기쁨과 고통과 욕망과 상실의 부화장이고 사랑의 꿈과 왜곡을 간직한 도서관, 마지막 삶이 거처할 최후의 집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재로 사라진다. 개체의 시간을 끝내고 무한에 섞여 드는 여정이다.”(373쪽)
소설은 현재형 시제로 쓰여 동시대적 시간 감각 속에, 타인의 살갗과 내면 모두를 감각하게 하는 섬세한 장면의 디테일, 삶과 죽음의 사유로써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그리하여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닿는 독자라면 지리멸렬한 삶이 얼마나 빛나는 우연과 운명으로 이뤄져 있는지 깨닫게 될지도.
첫 장편 『새의 선물』로 누적 발행 100쇄를 돌파하고 여덟 편의 장편소설과 일곱 권의 소설집을 펴낸 중견 작가 은희경은 왜 몸이라는 프리즘으로 우리네 삶과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 것일까. 그가 타협하지 않고 사유한 몸에 새겨진 시간과 인생의 감촉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은 작가를 지난 3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쓰는 과정에선 어떤 ‘불안한 순간’들이 오기도 하는데요, 이번에는 어땠나요.
“어떻게 보면 다른 소설보다 쓰는 게 힘들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냥 제 세대의 이야기이고, 제 기억이고, 그런 것을 조금 구체적으로 조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특히, 여행 장면은 제가 느꼈던 것이고, 여행지를 다시 가서 디테일을 더 구성하는 등 방법이 보이니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사실은 인물의 캐릭터를 설득시키기가 어려웠어요. 안나는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고 자기 세계 안에 사는 등 겉으로 보면 되게 차가워야 되잖아요. 세상을 싫어해야 될 것 같은데, 굉장한 휴머니스트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사람들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혼자 인사도 던지고, 추워하는 사람이 빨리 좀 신호가 바뀌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등 좀 따뜻한 사람이거든요. 조금 모순된 인물을 설득해야 되니까 어려웠는데, 왜 그랬냐 하면 저는 그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복잡하잖아요. 경선도 환대받으며 태어났고 사랑받고 자라서 어떤 허영심이 있는 인물일 것 같은데, 의외로 마음이 순수하고 인간의 사랑을 믿는단 말이죠. 결혼할 땐 세속적인 것과 거리가 먼 선택을 하고, 그 남자의 순수함을 믿죠. 이렇게 모순적인 인물을 설득해야 되는 게 좀 어려웠지만, 저는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는 그런 모순된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결국 독자들도 이 인물들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도시를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하셨는데요.
“네, 신도시는 만들어진 도시이기에 관계나 이런 것들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돼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있잖아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타인을 어떤 식으로 원하는가를 쓰기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만약에 전통 사회라면 건조한 관계를 설명하기가 조금 어울리지 않을 수 있고요. 신도시에서는 건조한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내면에 어떤 타인에 대한 다정함과 따뜻함을 끌어내는지 출발점으로 좋다고 생각했고요. 제가 작가가 된 해에 고양시로 이사를 왔거든요. 제 자신이 거의 신도시의 작가라고 불릴 만큼, 작가 생활을 그곳에서 해서 그곳에서 느끼는 것들이 많이 반영이 돼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효율적인 이유로 여기로 왔지만 오래된 곳이 아니기에 또 떠날 수 있죠. 이런 정서를 그리기에 신도시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60대의 서로 다른 언니 안나와 동생 경선 자매는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모두 제 안에서 나왔죠.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물에 대한 생각을 쌓아나갔죠. 둘 다 저의 모습에서 많이 나왔는데, 안나는 소설가로서의 저의 모습이 많이 반영된 것 같고, 경선은 일반적인 제 모습이 많이 투영된 것 같아요.”
─경선이 신장에서 종양이 발견되면서 두 자매가 다시 엮이고 근거리 해외여행도 다녀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격렬한 사건이 있는 거 같진 않아요.
“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해석이죠. 오래된 관계는 옛날 그 사람으로 알고 대하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바뀌고, 옛날에 잘못 알았을 수도 있고, 특히 자매니까 오래된 사이에서 오해가 나중에 풀어지잖아요. 과거를 다시 생각해 보면서 상대방에 대한 오해도 조금 해소가 되고, 나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면서, 모든 인생의 첫 순간이구나, 그러니까 마무리만 남은 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모두 첫 순간이다, 하는 생각을 좀 하게 하고 싶었어요.(사건이 중심이 아닌 인물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이렇게 탄탄하게 풀어갔다는 점에서 역시, 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은 크게 없지만, 두 사람의 60여년 인생이니까 많은 사건이 있었죠. 특히 경선이 이혼 과정에서 겪는 여러 부적절한 관계 등을 드라마틱하게 흥미롭게 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쓰고 싶진 않았어요. 안나의 연애도 가정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니까 뭔가 도파민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스토리나 사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돌아보고 지금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대해 써보고 싶었죠.”
─그런데 시간이 흔적을 남기거나 미래를 감지하는 프리즘이 왜 하필 몸이었나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제가 죽음이라는 것이 몸으로 증명되는 것이라는 소설을 쓴 적이 있어요. 아무리 정신이 멋을 부려도 몸이 끝나버리면 멋 부리기를 멈출 수밖에 없지요. 정신의 소멸 등에 대해선 많이 이야기했는데, 저는 몸에 집중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몸에 새겨진 이야기도 있고, 몸이 늙고 죽으면 사람은 죽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몸을 중심으로 얘기해 보고 싶었어요. 시간은 몸에 가장 확실하게 새겨지는 거니까요. 아무도 피할 수 없고, 정신은 조금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몸이라는 게 시간인데, 누구에게나 닥쳐오니까요.(혹시 특별히 시간에 따른 몸의 변화를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소설에 다 썼어요. 좀 낫게 해 달라고 병원에 가면 다 노화라고 그러지요(웃음).”
─소설 중에서 근거리 해외여행에서 ‘첫’ 게임을 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인데, 어떻게 이 장면은 나왔지요.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상상한 것을 그리기도 하고, 보드게임을 하는 것을 많이 봤어요. 자연스럽게 여행지에서 자기 인생을 쭉 이야기해야 되는데, 이야기를 할 때 이 게임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작가가 아직 기다리고 있는 ‘첫’이 있나요) 저는 되게 현세주의라고 해야 되나, 현실주의라고 해야 되나. 이게 더 좋아지면 좋겠다, 라기 보다는 안 변하면 좋겠다, 이런 것 같아요. (그건 ‘첫’이 아니지 않나요) 어차피 변할 건데, 안 변한다는 게 ‘첫’이죠. 나이가 들면 책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책도 계속 봤으면 좋겠고…. 사실 깊이 생각을 안 해봤어요. ‘첫’이 굉장히 새로운 거라고 생각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데, 어제의 저는 못 받아들이지만, 오늘의 저는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주인공 안나도 지금까지 자신의 영역 안에서 안 나가고 그 안에서 지키려고 살아왔지요. 한 번은 사랑을 하게 되는데, 그냥 포기했다는 게 은유적으로 나오거든요. 그때 뛰어내렸어야 됐구나, 하고 안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제의 제가 생각할 때는 오늘 이것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오늘의 저는 또 다른 저니까 뛰어내리려고요(웃음).”
─이번 작품은 작품 세계에서 어떤 의미나 특징이 있을까요.
“저는 시간에 대해 오래 생각했고, 또 많은 작품에 많이 반영됐습니다. 예전에 장편 『마이너리그』를 썼을 때 신수정 평론가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시간’이라고 했어요. 저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서 어떻게 해결되는가 보다, 이로 인해 사람의 삶 흐름이 어떻게 되나, 이런 것이 더 궁금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동화에서 마지막에 어떤 왕자와 공주가 역경을 딛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면, 저는 이 사람들은 과연 행복하게 살았을까 하고 그 뒤의 삶이 더 궁금했어요. 소설에서도 그 일 이후 이 사람이 어떻게 됐고, 이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나를 좀 많이 써왔던 것 같아요. 『새의 선물』은 30대 주인공이 어디서부터 잘못 됐길래 지금과 같이 원치 않는 인생을 살고 있나, 하고 열두 살로 거슬러 올라가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고, 『빛의 과거』에선 50대 후반의 인물이 왜 이런 삶을 살고 있을까, 왜 친구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청춘을 되돌아보지요. 이번 작품은 60대 중반에 두 자매가 왜 이런 사람이 됐을까, 왜 인생은 이렇게 흘러왔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생 전반을 돌아보는 이야기이고요. 이로써 시간에 대한 것은 다 쓴 것 같고, 그래서 앞으론 조금 더 현재적인 이야기를 쓸 것 같아요.”
소녀는 다소 이른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친구들은 모두 한 그룹으로 보이는 반면, 자신만 잘 섞이지 못한다고 하는 감정도 자주 느끼곤 했다. 부모의 교육열은 높았기에, 소녀 희경은 혼자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책을 많이 읽으니까, 국어를 잘하게 됐고, 글도 잘 쓰게 됐다.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것을 좋아하고. 그리하여 중고등학교 때 교지 편집부와 문예부 활동을 했고, 당연히 대학 국문과를 진학했으며, 소설가를 꿈꾸게 됐다. 은희경에게 ‘문학의 씨’가 뿌려진 순간이었다.
일찍부터 작가가 꿈이었고 글도 곧잘 썼지만, 은희경은 한동안 작가가 되지 못했다. 작가는 세상에 대한 질문을 품어야 했지만, 그는 당시에는 질문을 품지 않았다. 너무 모범생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순응주의자로 살았기에 질문이 없었고, 숙제가 주어지면 시스템 안에서 안전하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정답을 맞추려 했던 것 같아요.”
생활에 쫓겼던 측면도 있었다. 숙제하듯, 그는 직장 생활을 했고, 결혼도 했으며, 두 아이를 키웠고, 적금을 부어서 집도 마련했다. 프리랜서로 글도 쓰고, 출판사 교정도 보는 등 여러 일을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 새 30대 중반이 돼버렸다.
이것이 과연 내 인생인가. 30대 중반인 1994년 어느 날, 그는 어떤 각성과 함께 소설을 써보자는 용기가, 어떤 간절함이 불현 듯 생겼다. 축복 같은. 남편의 허락을 받고 친정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노트북 하나 들고 무주로 내려갔다. 한 달 정도 머무르면서 단편소설 다섯 편을 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회사를 다니면서 중편소설 「이중주」를 썼다. 두 달 만에 단편 다섯 편과 중편 한 편을 쓴 것이다.
1959년 고창에서 나고 자란 은희경은 중편소설 「이중주」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이 같은 해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에 각각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등단했다. 이후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 등을,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등을 발표했다. 특히 첫 장편 『새의 선물』은 독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누적 100쇄를 돌파하기도 했다.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첫 장편 『새의 선물』이 무려 100쇄를 돌파하기도 했는데요.
“『새의 선물』은 작가 생활의 문을 활짝 열어준 책입니다. 저의 질문의 단초들이 그 책에 담겨 있지요. 이 책 덕분에 안정된 환경에서 소설을 쓸 수 있었어요. 100쇄를 찍었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어떤 힘입니다. 계속 써도 된다는 어떤 격려니까요. 다만, 작가가 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저의 대표작이죠. 스스로 점점 더 잘 쓰고 있는데, 첫 책이 대표작이라는 것에 조금 좌절감이 없진 않아요. 점점 소수 취향으로 가는 것 같네요(웃음).”
―작품 세계를 조금 설명해 주시면.
“작가 생활 초기에는 그 동안 살아왔던 안정된 삶에 머무르려는 ‘자연인 나’와 질문을 던지고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작가 나’라는 ‘두 개의 나’가 있었어요. 그런데 작가로 살기 위해선 계속 질문을 해야 했어요. 저를 지켜준다고 생각한 이 시스템이 결국 저를 부조리하게 적응하도록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야 했기에 냉소의 작가, 비관주의자라거나 차갑다고 한 것이죠. 저는 제가 차갑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더 정확하게 보려고 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가족은 화목해야 하고 서로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시스템 속에 사람들을 적응시키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각성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 소설이 냉소적이고 비관적으로 보인 것 같아요. 우리의 세계와 삶이 서로 연결돼 있으니까, 동시대인으로서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항상 질문을 가지고 있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만들어본 게 제 소설입니다. (특히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온 것 같습니다만)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많이 쓴다는 것은, 타인이 궁금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하는 것이며, 그런 갈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계속 타인에 대해 고민하는 것 아닌가요.”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은 무엇인지요.
“저는 사건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사건은 얼마든지 조합에 의해 만들 수 있지요. 사건보다 캐릭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편견이나 선입견을 깨는 인물을 만들고 싶습니다. 여성에 대한 선입견, 남성에 대한 선입견, 아이나 노인, 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인물 만들기에 공을 들이는 편이에요. 상투적이거나 어떤 규정 속의 인물 말고, 내면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인물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죠. 또 한 가지는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써요. 이 사람이 오른손으로 잡을까 왼손으로 잡을까, 이런 것을 한참 생각하다가 도대체 읽는 사람에게 아무 상관없는 디테일에 공을 들이나, 생각하기도 하죠. 동선 같은 것도 딱 맞아야 되고요. 속도감을 떨어뜨릴 수 있어 이렇게 하지 않아야 되나, 생각도 하지만, 정밀하지 않거나 인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지지 않아요. 문장도 그냥 뜻만 전달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아직도 몇 가지 장면 정도는 좀 아름답게 인상적으로 기억되길 바라죠. 언젠가 한 번 읽고 그 순간에 조금 멈춰 어떤 여운과 아름다움을 좀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어요. 속도감과 효율성하고 거리가 멀지요.(이 지점이야말로 알고리즘과 매뉴얼에 따라 문장이 착착 나오는 AI(인공지능)과 차이이기도 하고, 인간의 반격이 시작되는 지점 아닐까요) 우리가 AI가 짜진 대로만 하면 새로울 게 없죠.”
―앞으로 어떤 작가나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딱히 없습니다. 어떤 작가다, 이런 것보다는 그냥 조금 오래 유효한 질문을 계속 하고, 독자들이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시대가 바뀌면 질문도 바뀌는 것인가요) 바뀔지 안 바뀔지는 저도 모르죠. 제가 어떤 사람이 돼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자녀들이 모두 성장한 뒤에야 은희경은 조금 여유 있게 소설을 쓸 수 있게 됐다. 보통 오전 6시쯤 일어나 30분쯤 집에서 요가 등 운동을 한 뒤 일찍 여는 카페에 간다. 3시간 정도 글을 쓴 뒤 집으로 돌아와 오후에는 이메일도 확인하거나 책을 보거나 사람들을 만난다. 쉬기도 하고.
마감이 다가오면 오후에 한 텀 더 글을 쓴다. 마감이 임박하면 글쓰기를 세 텀으로 늘리고.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그냥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기도. 취미는 퍼즐이나 스도구 게임. 밤 11시쯤 잠자리에 든다. 마감을 한 뒤에는 집안일을 하거나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만나거나 책을 읽는다. 책 속의 어느 장면이나 문장을 읽다가, 또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은희경은 문득 소설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차가운 듯 하면서도 따뜻한 안나도, 죽은 전 남편 P의 말을 되돌려준 동생 경선도….
“우리 모두는 고통을 겪고 또 해결하면서 현실을 살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변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은 어딘가에서 왕국을 건설하고 사계절을 보내고 있다. 내가 생각한 진실과 사랑이 그런 방식으로 지켜져서 훗날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그들이 그걸 믿는다면 죽음 또한 소멸이 아닌 시간의 재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