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종교가 남긴 사상의 유산, 이상헌을 다시 읽다 [종교칼럼]

교육이 학교보다 사람을 통해 증명되듯, 종교 역시 교리보다 사람을 통해 기억된다. 한 종교가 어떤 사람을 길러냈는가는 그 종교의 정신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의 원로였던 이상헌 전 통일사상연구원장은 처음부터 종교인이 아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반일 학생운동에 뛰어든 청년이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거리에서 시위를 했고, 항일운동 과정에서 한때 공산주의 계열 조직에도 몸담았다. 그 대가로 학창 시절 일본 경찰에 여러 차례 체포돼 고문을 받았고, 반일운동과 좌익운동으로 두 차례 퇴학을 당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를 공산주의에서 떠나게 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그는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민족애는 어디에서 오며, 인류애는 어디에서 오는가’ 유물론은 인간을 진화한 동물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는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인간의 사랑을 그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결국 그의 고민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사랑해야 하는가.

 

이러한 의문은 그를 오랜 구도의 길로 이끌었다. 불교, 유교, 기독교도 탐구했고 철학서도 뒤졌다. 일본 신종교인 ‘생장의 집’의 사상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끝내 만족하지 못했다. 어떤 사상도 그의 갈증을 완전히 풀어주지 못했다. 그는 훗날 그 시절을 “생지옥 같은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까지 생각했을 만큼 치열한 방황이었다.

 

1956년 문선명 총재를 처음 만나 통일원리를 접하면서 그는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들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특히 그를 감격하게 한 것은 역사관이었다. 인간과 삶의 의미를 하나의 틀 안에서 설명하는 체계를 발견했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상헌은 문 총재의 말씀을 접하며 한 가지 결심을 한다. “구슬은 꿰어야 보배다.” 그에게 문 총재의 가르침은 흩어진 구슬과 같았다. 아무리 귀한 진리라도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세상과 학문 속에서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구슬을 꿰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흩어진 말씀을 하나의 철학 체계로 정리해 후대에 남기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그는 문 총재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언제나 수첩을 꺼내 한 줄 한 줄 메모했고, 돌아와서는 그것을 다시 사상으로 정리했다. 자신을 승공사상의 창시자가 아니라 기록자이자 체계화하는 사람으로 여긴 그의 태도는 평생 변하지 않았다.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한 그는 전북 군산 개정면에서 개정병원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였지만, 낮에는 환자를 진료했고, 밤에는 인간 존재를 진단했다. 환자를 돌보는 일과 집필을 병행하며 ‘새 공산주의 비판’을 완성했고, 이어 ‘통일사상요강’을 출간했다. 존재론, 인식론, 인간론, 역사론, 교육론, 예술론에 이르는 철학 체계를 138편의 논저를 통해 구축하며, 문 총재의 사상을 현대 학문의 언어로 풀어내고자 했다. 이후 통일사상연구원을 이끌며 국내외 많은 교수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했고, 500회가 넘는 승공이론과 통일사상을 강의하며 지성 사회와의 접점을 넓혀갔다. 말년에는 언론사 사장과 대학 석좌교수 책임까지 맡으며 자신의 철학을 사회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그의 삶에서 인상적인 것은 지적 겸손이다. 그는 자신이 완성된 철학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통일사상의 내용은 문 총재에게서 왔으며, 자신은 그것을 체계화했을 뿐이라고 거듭 밝혔다. 더 나아가 훗날 자신보다 뛰어난 학자들이 나타나 이 사상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학문은 독점이 아니라 계승과 발전의 대상이라는 믿음이었다. 그가 통일사상을 체계화한 이유도 명예나 학문적 성취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나와 같이 인생길에서 고생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서 고민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사람의 몸을 돌보던 의사는 결국 사람의 삶과 영혼을 치유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큰 공헌은 공산주의에 대한 ‘사상적 대응’을 체계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이다. 1960~80년대 대한민국은 군사력뿐 아니라 사상의 전쟁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북한의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에 대응할 철학적 논리가 필요하다고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런 면에서 공산주의의 철학적 전제를 분석하고 비판한 작업은 분명한 사회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공헌은 종교를 학문의 언어로 발전시킨 것이었고, 한국 현대 종교사에서 보기 드문 ‘의사 출신 사상가’로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지성인의 한 모델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오늘의 대한민국은 뛰어난 전문가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지성인을 필요로 하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이상헌은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든 사상가였고, 인간과 역사, 사랑의 근원을 끝까지 묻고 자신의 삶으로 답을 찾으려 했던 구도자였다. 모든 사람이 그의 결론에 동의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삶만큼은 한국 현대 지성사의 한 장면으로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