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 대신 ‘차박’ 선택하는 구마모토 지진 피해자들 [재패나우]

규모 7.1의 강진이 덮친 규슈 구마모토현에 다녀왔습니다. 구마모토시 북쪽 피해가 컸던 2016년 지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시에서 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우키시(宇城市)와 그 바로 남쪽에 있는 히카와초(氷川町)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7월30일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에서 우키시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본 주유소 앞 모습. 수십 대의 차량이 기름을 넣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구마모토=유태영 특파원

30일 찾은 우키시에서는 밤에 집 대신 자동차에서 자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집이나 대피소 대신 이른바 ‘차박’(車泊)을 선택한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샤추하쿠(車中泊)라고 부릅니다. 지진 트라우마, 단전·단수의 영향, 사생활 보호, 무더위 등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미치노에키 우키 주차장에서 만난 다나카씨 가족은 “전기는 복구됐지만 아직도 물이 안 나와 집에서는 샤워도 설거지도 빨래도 할 수 없다”며 “어머니 약과 귀중품 등을 실어놓고 밤에는 차 안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고등학생 자녀가 대피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꺼리는 점도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열악한 대피소 환경

 

이곳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는 우키시 마쓰바세히가시방재센터에 마련돼 있었습니다. 차로 10분쯤 달렸더니 대피소 앞 급수차에서 물을 받아 차량으로 실어 나르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100대쯤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거의 꽉 차 있었습니다.

 

오전부터 30도가 웃도는 무더위였지만 대피소 안도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을 담당하는 시 관계자는 “에어컨이 방 안에만 있고 로비 쪽은 이동식 냉방기와 선풍기를 이용해 온도를 낮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대피소에는 220가구 약 400명이 등록을 했지만, 밤에 실제 잠을 자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다고 합니다. 골판지 침대나 텐트는커녕 세대 간 구획조차 어려워 보였습니다. 제가 방문한 시간에는 곳곳에 이부자리나 짐이 널브러진 가운데 스무 명 남짓 TV를 보거나 대화를 하면서 쉬고 있었습니다. 방학 도중 재난을 맞은 어린이들, 휠체어를 탄 노인과 장애인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들은 단수 탓에 건물 내부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어서 주자창 한켠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씁니다. 관계자 말로는 급수 시스템이 달라서 공중화장실 물은 나온다고 합니다.

7월30일 구마모토현 우키시 마쓰바세히가시방재센터에 마련된 대피소 급수차량에서 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우키=유태영 특파원
 

한여름 진도 7은 처음

 

30일 오후 기준으로 대피소는 총 406곳인데,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야쓰시로시(八代市) 가가미 체육관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나지마 준(50)씨는 요미우리신문에 “낮에는 지옥 같은 더위”라며 “밤에도 더워서 자다 깨기 일쑤였고, 물이 끊겨 씻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구마모토현 재난대책본부 회의 때 우키시 시장은 “가장 곤란한 점이 물, 전기”라며 “에어컨이 없어 마치 한증막 같은 상황”이라고 호소했다고 하네요.

 

이번 지진은 자연 재해가 잦은 일본에서도 새로운 도전입니다. 진도 7 이상을 나타낸 지진은 이번이 1995년 1월 한신 대지진 이후 8번째인데, 한여름에 발생한 적은 없었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3월,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은 4월에 일어났습니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지정 대피소가 된 공립 초·중학교 체육관도 냉방 설치 비율은 33.1%에 불과합니다. 구마모토현은 이보다 낮은 20.9%입니다. 구마모토현은 2016년 지진을 계기로 재난방지계획을 매년 업데이트하면서 대피소 운영 매뉴얼에 ‘에어컨, 이동식 냉방기, 선풍기, 부채 등 확보’를 명시했지만 예산 문제 등 때문에 진전이 더뎠다고 합니다. 한 관계자는 “일어나면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돼 버렸다”고 토로했습니다.

규모 7.1의 강진 피해를 당한 구마모토현 주민들이 우키시 마쓰바세종합스포츠문화센터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모습. 우키=AFP연합뉴스

장기 차박의 어려움

 

불가피하게 선택한 차박에도 어려움은 많습니다. 건강 문제가 가장 큽니다.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으면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이른바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호흡 곤란 등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구마모토현은 10년 전 지진을 계기로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는 압박 스타킹 비축, 차박용 주차장 지정, 대피소와 동일한 물자 지원 등 지침을 마련했지만, 대응이 미비했던 지방자치단체가 많았다고 합니다.

 

요미우리가 지난 3·4월 전국 주요 지자체 10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박 대피 조사에서는 관련 지침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차박용 공간을 확보하지 않은 곳이 각각 60%가 넘었습니다.

 

차에 기름을 넣는 것도 일입니다. 구마모토 현장에 있는 동안 주유소 앞에 길게 늘어선 차량을 수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빚어지는 도로 정체도 심했습니다. 대기 행렬이 없는 주유소에는 ‘품절’ 안내판이 세워져 있거나 가격 표시등이 꺼져 있었습니다. 차량 1대당 20리터 식으로 급유량을 제한하는 주유소도 있다고 합니다.

 

우키시까지 저를 태워 준 택시기사는 “유조차가 들어오지 못해 주유할 수 없었던 2016년 지진 때의 기억 때문에 다들 필사적으로 기름을 넣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나카씨는 “2016년 지진 때는 창문만 조금 열어놓으면 됐었는데 이번에는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잘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규모 7.1의 강진 피해 다음날인 7월29일 밤 구마모토 시내 번화가의 한 편의점에 생수, 보리차, 녹차, 이온음료 등의 재고가 바닥 나 선반이 빈 채 ‘품절. 죄송합니다. 지진 때문에’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구마모토=유태영 특파원

일상 회복은 언제쯤

 

구마모토는 피해가 적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조금씩 평소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NHK방송에 따르면 JR규슈는 후쿠오카현 하카타역에서 구마모토역 구간의 안전이 확인됨에 따라 31일 신칸센 운행을 재개했습니다. 지진 공포에 질려 택시를 잡아 타고 “어디든 공항이 있는 곳까지 가 달라”고 요청하는 관광객이 적지 않았던 사흘 전과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지진 피해자들은 언제쯤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우키시 관계자는 “10년 전에는 4월부터 8월쯤까지 대피소를 운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다나카씨 가족들은 2주쯤 차박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피해가 컸으니 더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예기치 못한 재난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구마모토 지진 피해 현장을 취재하면서 한국은 얼마나 대비가 돼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재패나우

일본은 2025년 한국인 945만여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가깝고 친숙한 나라입니다. 재패나우(Japan+Now)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도쿄에 사는 이방인의 눈으로 본 일본을 가급적 편견 없이, 소재 가리지 않고 전하고자 합니다. 일본어로 ‘아우’(会う)는 ‘만나다’라는 뜻입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재패나우(Japan+아우·会う)를 통해 일본을 더 생생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