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조향사 키운 P&G…‘채용’ 넘어 글로벌 인재 직접 만든다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P&G가 전문 연구인력 육성과 채용전환형 인턴십을 연계하며 한국 인재들의 글로벌 무대 진출 기회를 넓히고 있다.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려운 조향 인력을 사내에서 장기간 육성하는 동시에, 인턴에게도 해외 사업장과 연구개발 현장을 경험하게 하는 방식이다.

 

한국P&G 제공

1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P&G는 최근 싱가포르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조향사 육성 과정을 밟은 한국인 노수진 씨가 정식 조향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조향사는 여러 향료를 조합해 제품의 향을 설계하는 전문 연구인력이다. 후각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향료의 특성과 안정성, 소비자 선호도, 제품 제형에 대한 이해가 함께 요구돼 실무형 인재를 키우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노 조향사는 국내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의 향수·화장품 전문 교육기관 이집카(ISIPCA)에서 관련 과정을 수료했다. 2024년 P&G에 입사한 이후에는 회사의 조향사 육성 프로그램과 선임 조향사의 멘토링을 거쳤다.

 

현재는 동남아시아 시장에 출시되는 패브릭·홈케어 제품의 향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P&G는 다우니와 페브리즈 등 주요 브랜드에 적용되는 향을 외부에서 단순 조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부 조향사와 연구진이 직접 개발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현재 소속 조향사는 20여 명이다.

 

신입 조향사에게는 입사 후 최대 3년간 교육과 실무 훈련이 제공된다. 향료에 대한 이론 교육과 제품 개발 경험을 병행하고, 숙련된 조향사가 일대일로 지도하는 도제식 교육도 이뤄진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싱가포르 이노베이션 센터가 있다. 이 센터는 P&G가 아시아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는 핵심 연구개발 거점이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에 따르면 현지 최대 민간 연구개발센터이기도 하다.

 

인근 싱가포르 파이오니어 플랜트에서는 P&G 제품에 들어가는 향료를 생산한다. 2008년 설립된 이 공장은 P&G가 운영하는 전 세계 향료 생산 거점 가운데 하나이자 아시아 최초의 P&G 향료 생산시설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향료는 패브릭·홈케어와 뷰티 제품을 만드는 아시아 지역 생산기지로 공급된다.

 

연구시설에서 향을 설계하고 생산시설에서 실제 제품에 적용하는 구조를 갖추면서 교육과 연구, 생산을 한 지역에서 연결한 셈이다.

 

한국P&G는 전문 연구인력뿐 아니라 신입 인재 육성에도 글로벌 사업장 경험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2026 채용전환형 인턴십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싱가포르에 있는 P&G 아시아 지역 본부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현지 임직원들과 만나 글로벌 조직의 업무 방식을 살펴보고, 매장과 연구개발 시설을 둘러봤다. 제품이 기획·개발돼 시장에 출시되는 과정과 아시아 소비시장의 특성을 현장에서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P&G는 공식 채용 안내에서도 한국 인턴십 참가자에게 싱가포르 본부를 방문해 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할 기회가 제공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인턴에게는 지원 직무와 관련된 실제 프로젝트도 맡긴다. 브랜드 성장전략 수립과 신규 유통채널 진출방안 마련, 재무 분석, 공급망 관리 시스템 구축 등 정규 직원이 수행하는 업무의 일부를 직접 경험하게 한다.

 

인턴십 평가 결과에 따라 정규직 입사 제안도 이뤄진다. 인턴십을 단순한 직무 체험이 아니라 신입사원 선발과 초기 교육을 결합한 과정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한국P&G는 2025년 상반기 채용전환형 인턴십 참가자들에게도 싱가포르 탐방 기회를 제공했다. 해외 조직 경험을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인재 육성 프로그램의 한 축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향을 기업의 핵심 연구자산으로 관리해온 사례는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1970년 연구소 안에 향료 연구 조직을 신설한 뒤 조향사를 중심으로 향 연구를 이어왔다. 제품에 적용되는 향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자생식물에서 향을 포집하고 한국적 향 원료를 발굴하는 연구도 진행해왔다.

 

2023년에는 이러한 연구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서울 종로구 북촌에서 ‘북촌 조향사의 집’ 전시를 열었다. 70여 년간 축적한 향료와 연구자료, 과거 제품을 공개하고 조향사가 참여하는 향수 제작 수업도 운영했다.

 

생활용품과 뷰티 제품에서 향은 소비자가 제품을 처음 인식하고 재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꼽힌다. 국가와 세대, 생활문화에 따라 선호하는 향도 달라 현지 소비자를 이해하는 조향사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향사는 향료 지식만으로 완성되는 직무가 아니라 제품과 소비자, 시장에 대한 경험이 오랜 기간 축적돼야 한다”며 “필요할 때 외부에서 곧바로 채용하기 어려운 만큼 기업이 교육과 멘토링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