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빅리그 112승의 ‘불혹 직전’ 카라스코, LG 데뷔전 7이닝 74구 퍼펙트…왜 8회엔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나 [남정훈의 비욘드 더 그라운드]

이것이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인가. LG의 대체 외국인 투수 카를로스 카라스코가 KBO리그 데뷔전에 7이닝 퍼펙트라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통산 112승을 거두긴 했지만, 불혹을 바라보는 1987년생의 베테랑이기에 KBO리그에서 과연 통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갖게 했지만 적어도 데뷔전에서는 자신의 이름값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LG 카라스코, 7이닝 퍼펙트 압도적 데뷔전. 연합뉴스

카라스코는 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KBO리그 두산과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7이닝 동안 단 74구에 불과할 정도로 효율적인 투구로 두산 타선에 안타는 물론 볼넷, 사구 등 출루를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투구를 펼쳐보였다. 탈삼진은 단 2개에 그쳤지만, ABS의 보더라인을 공략하는 커맨드 능력과 제구가 환상적이었다.

 

카라스코는 빅리그 커리어는 KBO리그에 온 외인 투수 중 최고 수준이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카라스코는 2003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뉴욕 메츠, 뉴욕 양키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17시즌 343경기(선발 286경기) 등판 1704이닝 112승 105패 평균자책점 4.24.

 

2009년 클리블랜드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카라스코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며 정상급 선발투수로 군림했다. 2015년 14승12패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빅리그에서 10승 이상을 기록한 카라스코는 2017년엔 18승6패 3.29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다승왕에 올랐다.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4위에 오를 정도였다.

사진=뉴시스

2019년부터 부진했던 카라스코는 메츠 소속이었던 2022년 15승7패 3.97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다만 2023년부터는 다시 빅리그에서 선발투수로 뛰기 어려운 수준의 성적을 냈다. 지난해 애틀랜타로 옮긴 카라스코는 올해도 애틀랜타 소속으로 8경기에 중간 투수로 등판하여 16.2이닝 평균자책점 5.94, 마이너리그(AAA) 8경기(선발 6경기) 35.1이닝 동안 2승 1패 평균자책점 2.55를 기록했다.

 

KBO리그에 ABS가 도입된 이후 외인 투수 트렌드는 바뀌었다.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없어 이름값이 떨어지더라도 시속 150km가 훌쩍 뛰어넘는 포심 패스트볼을 ABS존 높은 코스에 때려박아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는 영건 투수들이 각광을 받았다. 지난 시즌 LG의 대체 외인으로 왔다가 통합우승에 기여한 앤더스 톨허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그에 비해 카라스코는 이런 트렌드에 완벽하게 반대의 투수다. 빅리그 커리어는 최상급이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때문에 전성기에 비해 포심 패스트볼의 구위는 뚝 떨어져있다. 올해 미국에서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약 147km 정도였다.

LG 염경엽 감독. 뉴시스

이런 트렌드에 대해 LG 염경엽 감독은 카라스코 영입 발표 직후 더그아웃 인터뷰에서 “반대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코너워크가 잘 되면 ABS에서도 크게 유리하다. 던지고 싶은 곳에 던질 수 있는 커맨드가 좋은 유형의 투수로 보인다. 타자를 압도하는 구속은 없어도 ABS 활용을 보더라인 위주로 해낼 수 있다면 더욱 효과적인 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반박한 바 있다.

 

뚜껑을 열자 카라스코의 피칭은 염 감독의 말대로 구속이 150km를 넘지 않아도 타자들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보였다. 주무기인 슬라이더가 특히 일품이었다. 1회 선두타자 박찬호를 바깥쪽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으로 솎아낸 카라스코는 이후에도 슬라이더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배트의 스윗스팟을 피해가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모든 공이 안정된 제구 속에 스트라이크존 언저리에 형성되면서 타자들로서는 방망이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1회를 9구 만에 삼자범퇴로 처리한 카라스코는 2회 8구, 3회 10구, 4회 7구, 5회 11구까지 5이닝을 단 45구 만에 처리하는 모습이었다.

 

퍼펙트의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상황. 6회도 11구만에 끝낸 카라스코는 7회 1사에서 세베리노에게 3B-1S로 카운트에 몰렸다. 그러나 5구 144km짜리 투심을 몸쪽 하이존의 보더라인에 걸치는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뒤 142km짜리 커터를 바깥쪽 높은 코스에 찔러넣어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카운터에 몰리더라도 보더라인으로 찔러넣는 커맨드와 제구가 돋보인 장면이었다.

 

7회 17구를 던져 7이닝 74구가 되자 염 감독은 8회부터 마운드를 사이드암 우강훈으로 교체했다. 경기 전 카라스코가 데뷔전임을 감안해 70구 정도로 투구수를 제한하겠다고 공언했는데, 7이닝 퍼펙트 진행 중이었음에도 염 감독은 이를 지켰다.

LG 염경엽 감독. 뉴시스

다만 이 선택이 LG에게는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LG 타선은 두산 선발 곽빈에게 6이닝 동안 탈삼진 10개를 헌납하면서도 5회 오지환의 우선상 2루타와 이주헌의 좌측 펜스를 직격하는 적시 2루타로 선취점을 낸 뒤 2사 후 홍창기의 중전 적시타로 2-0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카라스코에 이어 올라온 우강훈은 1사 뒤 김민석에게 안타를 맞아 이날 첫 출루를 허용했고, 2사 1루 상황에서 전날 홈런 2방을 때려내며 절정의 타격감을 뽐내고 있는 김대한에게 중견수 박해민의 키를 넘기는 중월 2루타로 한 점을 내줬다. 급해진 염 감독은 부랴부랴 마무리 손주영을 올려 4아웃 세이브를 맡겼지만, 두산 김원형 감독이 좌타자 조수행 대신 우타자 박지훈을 대타로 올렸고, 박지훈이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카라스코는 7이닝 퍼펙트에도 불구하고 승리가 날아가며 노디시전 처리가 됐고, 손주영은 마무리 전향 후 첫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고 말았다.

 

결과론이지만, 카라스코에게 8회까지 맡겼다면, 아니 투구수 제한이 없었다면 이날 승부는 어떻게 됐을까. 1982년 출범 후 KBO리그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퍼펙트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만큼 카라스코의 이날 피칭은 역대급 데뷔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