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중국군 최고 통수기구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7명 가운데 5명이 잇따라 낙마한 대대적 군부 사정은 단순한 부패 척결을 넘어 군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절대적 통제를 재확립하려는 조치라는 분석이 나왔다. 마오쩌둥 시대부터 이어진 ‘당이 총을 지휘한다’는 원칙이 시진핑 체제에서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022년 출범한 현 중앙군사위에는 현재 주석인 시진핑 국가주석과 군 반부패 업무를 담당했던 장성민 부주석만 남아 있다. 장유샤·허웨이둥 전 부주석을 비롯한 나머지 위원 5명은 부패 또는 기율 위반 혐의로 해임되거나 조사를 받고 있다.
시 주석에 이어 중국군 서열 2위였던 장유샤 전 중앙군사위 제1부주석은 지난 1월 류전리 중앙군사위 위원 겸 연합참모부 참모장과 함께 조사 대상에 올랐다. 이에 앞서 허웨이둥 전 부주석과 먀오화 전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도 부패와 심각한 기율 위반 혐의로 당과 군에서 제명됐다.
리상푸 전 국방부장은 2023년 10월 해임된 뒤 이듬해 당에서 제명됐고, 전임자인 웨이펑허 역시 당적과 군 계급을 박탈당했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사형유예 판결을 받았다.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장유샤 낙마 직후 사설에서 그가 “중앙군사위 주석책임제를 심각하게 짓밟고 훼손했다”며 “당의 군에 대한 절대적 영도에 영향을 미치고 당의 집권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정치·부패 문제를 심각하게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부패 혐의뿐 아니라 시 주석을 정점으로 하는 군 지휘체계를 흔들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SCMP는 지난 1일 건군 99주년을 맞은 인민해방군이 100주년을 앞둔 상황에서 군에 대한 당의 통제를 거듭 강조하는 배경에는 중국 현대사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의 군 통제 원칙은 1929년 12월 마오쩌둥이 푸젠성 구톈에서 개최한 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구톈 회의는 중국 홍군을 혁명의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는 무장 집단으로 규정하고 군 전반에 공산당 조직을 설치했다.
마오쩌둥은 공산당 공동창립자이자 혁명 노선 경쟁자였던 장궈타오가 이탈한 뒤인 1938년 “당이 총을 지휘한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며, 총이 당을 지휘하도록 허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군을 국가가 아닌 공산당의 무장조직으로 규정한 이 원칙은 지금까지 중국의 당·군 관계를 지탱하는 토대로 남아 있다.
시 주석도 2014년 구톈에서 전군정치공작회의를 열고 마오쩌둥이 세운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는 당시 “군에 대한 당의 절대적 영도를 견지하는 것은 강군 건설의 혼”이라며 군에 혁명 전통과 정치적 기율을 지킬 것을 주문했다.
이듬해부터는 대대적인 군 개혁이 시작됐다. 기존 4대 총부를 해체해 중앙군사위 직속 기능별 부서로 재편하고, 중앙군사위가 전반적인 통수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전구사령부가 합동작전을 지휘하고 각 군종은 전력 건설을 담당하도록 했다. 기존 총부와 개별 군종이 갖고 있던 인사·장비·자원 배분 권한을 축소해 중앙군사위로 집중시킨 것이다.
2017년에는 중앙군사위 주석책임제가 공산당 당장에 명시됐다. 이에 따라 중앙군사위 주석은 군 인사와 예산, 주요 군사행동, 기술 개발 등 핵심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부주석과 다른 위원들은 주석의 결정을 보좌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군의 일상적인 운영에는 상당한 권한 위임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위원, 각 군종 지휘부는 어떤 정보를 주석에게 보고할지, 주석의 명령을 어떻게 해석할지, 누구를 진급 대상에 포함할지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군 내부 인맥은 장교들이 당과 최고지도자보다 자신을 승진시켜 준 상관에게 먼저 충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한 정치학자는 “중국군은 사실상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체계”라며 “당의 군 통치는 당 총서기가 중앙군사위에서 유일한 최종 결정권자가 되는 데 달려 있다”고 SCMP에 말했다.
중국 지도부는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배한 원인도 군에 대한 당의 통제력 차이에서 찾는다. 공산당은 군대 각급에 당 조직과 정치위원을 배치한 반면 국민당 지방 조직은 군과 관료를 감독하거나 징계할 권한을 확보하지 못했다. 내전이 본격화하면서 실권이 군부로 넘어갔고, 장제스 역시 자신이 직접 장악한 군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991년 소련 붕괴도 중국이 군대의 정치적 중립을 의미하는 ‘군대 국가화’를 거부하는 주요 근거로 작용했다. 중국 지도부는 소련 공산당이 군에 대한 통제를 느슨하게 하면서 정치적 위기 때 군이 당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아메리칸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이자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인 조지프 토리지언은 “시 주석은 국내 정치 위기나 해외 전쟁 때 군이 당에 복무하려면 올바른 세계관을 갖춰야 한다고 믿는다”며 “군 지도자의 부패는 중국군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신념과 이상주의가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로 침식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