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고, 내 70 평생에 이런 가뭄은 난생 첨입니더. 벼농사에 쓸 물도 말라가니 내 속도 바짝바짝 타들어갑니더.”
2일 경남 양산시 화제리에서 만난 70대 농민 김모씨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진 논바닥을 가리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50년 동안 벼농사를 지어왔다는 김씨는 연일 이어지는 최악의 폭염과 가뭄으로 논에 대줄 물조차 턱없이 부족하다며 절망감을 토로했다. 이날 양산 낮 최고기온은 42.5도까지 치솟으며 대한민국 기상 관측 역사를 새로 썼다.
극한 폭염과 가뭄은 농가의 일상마저 바꿔놓았다. 전남광주 나주시 노안면에서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는 김모(61)씨 부부는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새벽 5시30분부터 수확 작업에 나선다. 이들 부부는 오전까지 포장작업을 마친 뒤 오후에 쉰다. 그럼에도 수확량과 매출액은 10% 이상 줄었다. 복숭아 생육에 적정한 온도는 25∼26도인데 최근 35도가 넘으며 상품의 경우 20%가량 떨어져서다.
논농사 사정도 마찬가지다. 벼 이삭이 피어올라 한창 물이 필요한 이맘때, 논물이 바짝 말라 비료조차 녹지 않는 실정이다. 농민들은 가을 수확량이 토막 날 것을 우려하며 타들어 가는 들녘을 바라보고 있다. 논농가의 피해는 용수가 부족해서다. 올해 6~7월 부산·울산·경남의 누적 강수량은 161.9㎜로, 평년(487.4㎜)의 32.7%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전국 기상관측망이 확충된 1973년 이후 54년 만에 두 번째로 적은 강수량이다. 경남 양산·밀양·창녕 3개 시·군에 용수를 공급하는 낙동강 밀양댐의 가뭄 단계는 2일 ‘경계’로 올라섰다. 경북지역 용수댐인 운문댐은 저수율이 27%로 이미 가뭄 ‘심각’ 단계에 진입했다.
창원시는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방서의 소방차량을 활용해 용수가 부족한 농가를 대상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양산에서는 최근 연일 40도를 넘어서고 마른장마의 영향으로 가뭄까지 겹치면서 ‘기우제’까지 등장했다. 가야진용신제보존회는 지난달 30일 나동연 양산시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원동면 용당리 가야진사에서 단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열기도 했다.
닭과 돼지 폐사도 잇따르고 있다. 경북 경주에서 닭 9만마리를 사육하는 이순원씨는 “평소엔 하루 10마리 정도가 폐사했는데 지금은 하루에 300마리 정도 폐사한다”고 하소연했다. 포항에서 돼지 3500마리를 사육하는 심창섭 한돈협회 포항시지부장은 “축사에 설치된 에어컨으로 인해 기온이 너무 낮아지면 돼지들이 힘들어하고 물을 뿌리면 습도가 높아져 늘 좌불안석”이라고 말했다.
더위를 피하려 찾던 계곡 피서지도 소멸 위기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거락계곡은 폭염과 가뭄으로 수위가 평년 50~60㎝에서 절반으로 반 토막 났다. 얕아진 계곡물에 피서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창원 달천계곡과 진해 대장천도 계곡물이 말라 방문객이 크게 줄었다.
폭염의 재앙은 바다까지 덮쳤다. 경남 남해안 연안 수온이 급상승하면서 사천만과 강진만 해역에 올여름 첫 ‘고수온 경보’가 발효됐다. 남해 강진만 표층 수온은 27.8도까지 올라 우럭 등 양식 어류의 서식 한계 수온(28도)에 바짝 다가섰다. 이미 하동군 7개 어가에서 가숭어 1만4000마리가 폐사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