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울이 해외 미술을 소개받는 시장이었다면, 이제는 세계 미술계와 한국 미술이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성훈(사진) 한국화랑협회장은 2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 미술시장의 변화를 이같이 진단했다.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이 주요 국제 행사로 자리 잡고 해외 갤러리와 미술기관의 국내 활동이 늘면서, 서울이 해외 미술을 소비하는 시장을 넘어 한국 작가를 세계무대와 연결하는 거점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준 높은 작가층과 화랑, 미술기관, 컬렉터 문화가 오랜 시간 축적됐고, 그 위에 국제 아트페어의 성장과 해외 기관의 진출이 더해졌다. 한국 작가의 해외 전시와 미술관 소장, 해외 갤러리와의 협업도 꾸준히 늘고 있다.
국내 시장의 체질도 달라졌다. 2021년 호황은 팬데믹 이후 미술에 대한 관심 확대와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 팽창, 풍부한 유동성이 맞물린 결과였다. 새로운 컬렉터가 유입된 것은 성과였지만 작품의 예술적 가치보다 투자성이 앞서는 현상도 나타났다. 반면 지금은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 세계와 장기적인 소장가치를 따지는 컬렉터가 늘고 있다. 이 회장은 “화랑 현장에서도 단기적인 가격 상승보다 작가의 성장 가능성을 살피고 한 작가를 오랫동안 지지하려는 문의와 구매가 점차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을 투자상품이 아닌 문화적 자산으로 보고 작가의 성장을 함께하는 컬렉팅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변화는 한국 작가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다. 지난해 국내 경매 최고가 상위 10점 가운데 7점이 한국 작가의 작품이었다.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도 원로·중견에서 젊은 작가로 넓어졌고, 진출 경로 역시 갤러리와 아트페어, 미술관, 비평 플랫폼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 회장은 “국내 컬렉터들이 한국 작가의 독보적인 작업 세계와 미술사적 가치를 재평가하며 소장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9월 열리는 키아프 서울 2026 특별전도 국내 작가 중심으로 구성해 한국 현대미술의 저력과 다양성을 조명한다.
이 회장은 서울의 경쟁력으로 두터운 관람층과 젊은 세대의 높은 참여도를 꼽았다. 그는 “전시에서 생긴 관심이 작품 소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며 “미술관은 관람층을 넓히고 화랑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컬렉터와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장치로는 미술진흥법을 꼽았다. 이 회장은 법 제정으로 미술 생태계 지원의 토대가 마련된 점은 의미가 있지만 “작가와 화랑, 미술기관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으로 이어지려면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