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998년 4월 7일, 지금은 없어진 서울 삼성플라자 태평로점 광장에서 호랑나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연예계 대표 축구 매니아 가수 김흥국이 “프랑스 월드컵 한국축구 16강 진출기원 프리킥 경연대회”에 참가해 슛을 하고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국내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16강 진출을 염원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월드컵 개막을 일주일 앞둔 1998년 6월 4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의 출정식 겸 '16강 진출 기원대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다음 2002 월드컵 개최를 앞둔 시점이라 전 국민의 열기는 뜨거웠다.
당시 주요 금융권과 백화점 등 유통 업체들은 '월드컵 16강 진출 기원‘ 고객 사은 행사를 대거 선보였다. 월드컵 기념 카드 발급 및 가입 고객 추첨을 통해 푸짐한 경품을 증정하며 국민적 관심을 고조시켰다. 언론도 매일같이 대표팀의 전력 분석과 함께 16강 진출 가능성을 조명하는 특별 기획을 쏟아내며 열기를 더했다.
하지만 국민적인 관심과 응원을 받으며 시작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과는 최종 성적은 조별리그 탈락(32개국 중 27위)으로 처참하게 마무리 됐다.
차범근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멕시코전 1-3 패, 네덜란드전 0-5 패, 벨기에전 1-1 무승부로 1무 2패의 저조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세계적인 강호 네덜란드를 상대로 0:5 대패를 당한 이 경기의 부진으로 인해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 경질되는 한국 축구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멕시코 와의 1차전에서 하석주가 팀의 월드컵 본선 사상 첫 선제골을 기록하고 바로 백태클 퇴장을 당한 사건도 기억나는 월드컵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