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에 눈물 흘린 1조원 스타…결국 축구계 ‘차별금지 규정’ 바꿨다

빈민가 소년에서 레알 마드리드 간판으로
비니시우스가 그라운드 안팎에서 벌인 싸움

“저는 그저 축구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2024년 3월,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를 하루 앞둔 기자회견장. 브라질 축구 스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26·레알 마드리드)가 끝내 고개를 숙였다. 인종차별에 관한 질문을 받은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눈물을 쏟았다.

 

인종차별에 눈물 흘리는 비니시우스. AP뉴시스

 

“계속되는 인종차별로 점점 축구하는 게 싫어집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가 넘어야 했던 것은 상대 수비수만이 아니었다.

 

변방 상곤살루에서 온 소년

 

비니시우스가 태어난 상곤살루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인근의 변두리 도시다. 가난과 폭력이 일상이던 동네였다. 비니시우스는 할머니가 물려준 소박한 집에서 자랐다.

 

여섯 살이던 2006년,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브라질 명문 플라멩구 유소년 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 배운 축구는 풋살이었다. 좁은 코트에서 공을 지키고 방향을 틀어 상대를 제치는 법을 익혔다. 훗날 세계를 사로잡은 그의 드리블은 이 작은 코트에서 다듬어졌다.

 

열 살 무렵 플라멩구 메인 아카데미에 발탁된 뒤로는 매일 약 70㎞ 떨어진 훈련장을 오갔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상파울루로 떠났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을 안은 채 아들을 훈련장에 데려다줬다. 결국 그는 훈련장과 가까운 삼촌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렇게 버틴 시간을 지나 비니시우스는 브라질 최고의 유망주로 자랐다.

 

비웃음을 실력으로 되갚다

 

2017년, 열여섯 살 비니시우스가 프로에 데뷔하자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이 움직였다.

 

레알 마드리드였다.

 

레알은 유럽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지 않은 소년에게 4500만유로(약 640억원)를 걸었다. 

 

다만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미성년 선수는 곧바로 이적할 수 없어 비니시우스는 18세가 된 2018년에야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그에게 처음부터 꽃길이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빠른 발로 수비수를 제치고도 골문 앞에서는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결정력이 없다’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조롱은 안에서도 날아왔다. 동료 카림 벤제마가 하프타임에 다른 선수에게 “저 선수에게 패스하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포착됐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산티아고 솔라리 감독 아래 출전 기회를 얻으면서 폭발적인 스피드와 저돌적인 돌파로 조금씩 자기 자리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실력으로 평가를 뒤집었다.

 

202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결승골을 터뜨려 레알에 통산 14번째 유럽 정상을 안겼다. 이듬해에는 라울 곤살레스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달았던 레알의 상징, 등번호 7번을 물려받았다.

 

2024년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데 이어 발롱도르 2위와 FIFA 올해의 선수에 올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등번호 7번을 대물림받은 비니시우스. AP뉴시스

 

수상 직후, 비니시우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월드컵 규정까지 바꿨다

 

세계 최고가 된 뒤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화려한 드리블과 춤 세리머니는 일부 상대 팬들의 표적이 됐다. 경기장에서는 그를 ‘원숭이’라고 부르는 인종차별적 구호가 등장했고 경기장 밖에서는 그의 유니폼을 입힌 인형을 다리에 매다는 일까지 벌어졌다.

 

비니시우스는 침묵하지 않았다. 인종차별에 맞서는 일은 축구만큼 중요하다며 변화를 요구했고 결국 축구계가 움직였다. 

 

FIFA는 2024년, 인종차별 피해 선수가 두 손목을 교차해 ‘X’를 만들면 심판에게 곧바로 피해 사실을 알리고 경기를 멈출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올해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입을 가려 차별적 발언을 숨기는 행위도 퇴장 대상으로 규정을 강화했다.

 

한 선수의 싸움이 축구의 규칙을 바꾼 것이다.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하는 비니시우스. AP뉴시스

 

수천억 이적설의 주인공

 

그의 이름 앞에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따라붙는다. 레알 마드리드가 그에게 매긴 방출 조항은 10억유로, 우리 돈 약 1조6000억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축구가 관심을 보이며 수천억원대 이적설도 제기되고 있다.

 

스무 해 전, 상곤살루의 골목을 맨발로 누비던 소년에게 세계 축구는 이제 그의 몸값에 1조원이 넘는 값을 매긴다. 하지만 그가 끝내 지켜낸 것은 몸값이 아니라 고개 숙이지 않을 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