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40억원짜리 이혼이 남긴 것 [알아야 보이는 법(法)]

이경진 변호사의 ‘슬기로운 가정생활’

재산 분할은 혼인 중 부부가 협력해서 이룬 재산을 청산·분배하는 제도입니다(민법 제839조의2). 판례는 오래전부터 “부부 일방이 상대방의 재산 증식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았더라도, 가사노동이나 내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면 재산 분할의 대상이 된다”는 법리를 확립해 왔습니다. 최근 선고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의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은 이 오래된 법리가 ‘조 단위’ 자산 앞에서도 그대로 관철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 기초 사실

 

두 사람은 1988년 결혼했다. 2015년 최 회장은 혼외자의 존재를 밝히며 이혼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2017년 최 회장의 이혼 조정 신청 후 처음엔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이 2019년 입장을 바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절반에 대해 재산 분할을 청구하면서 11년여의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 사건의 경과

 

-1심 판결은 위자료 1억원, 현금 665억원 지급을 명했다. SK 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에서 제외하고, 최 회장이 단독으로 상속 및 증여받았다고 보이는 주식 등의 재산을 뺀 나머지에 대해 노 관장의 기여도를 40%로 인정했다.

 

-2심은 SK 주식을 분할 대상에 포함시키고,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원한 비자금 300억원도 기여분으로 인정해 재산 분할액을 1조3808억원, 위자료를 20억 원으로 각각 대폭으로 늘렸다. 노 관장의 기여도는 35% 인정됐다.

 

◎ 대법원 및 파기환송심의 판단

 

-대법원은 뇌물의 일부인 불법 자금(비자금)은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질서에 반해 법의 보호 밖에 있다고 보아 재산 분할 부분만 파기·환송했다. 위자료 20억원과 이혼 자체는 확정됐다.

 

-파기환송심의 결과는 노 관장의 기여도를 33.3%로 보아 재산 분할금 9440억을 판결했다. 대법원의 법리대로 300억원의 비자금은 제외하되 SK 주식은 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SK 주식의 재산 분할 기준 시점은 파기환송심 변론 종결일(2026년 4월16일, 주가 80만원대)과 이혼소송 2심 변론 종결일(2024년 4월16일, 주가 16만원대) 중 후자를 기준으로 했다.

 

⊙ 이경진 변호사의 팁(Tip)

 

재벌가 이혼소송을 보면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금과 위자료에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살펴보면 보통의 이혼소송에도 시사점이 있습니다. 분할 대상 재산의 가액 판단 기준일은 ‘사실심 변론 종결일’입니다. 요즘은 주식, 코인처럼 가격 변동성이 큰 자산을 가진 평범한 부부도 많습니다. 이번 판결은 “재판 도중 자산 가치가 변동해도 재산은 사실심 변론이 끝난 시점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줬습니다. 다만 가격 변동성은 재산 분할 비율에 참작할 수 있으므로 변론 종결일 후 선고 전까지 재산 변동 상황을 재판부에 알려야 합니다.

 

또한 회사 등기부에 이름 한 줄 없더라도 가사노동과 사회적 조력이 재산의 형성, 유지에 기여했음이 인정되었는바 역시 내조는 숫자로 환산할 수 있습니다.

 

이경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jin.lee@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