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이기고 피어난 ‘꿈’… 삶 향한 열정 ‘춤’춘다 [밀착취재]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 채수민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플로어 위, 경쾌하고 때로는 매혹적인 선율에 맞춰 휠체어가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휠체어의 바퀴는 마치 스케이트 날처럼 매끄럽게 회전하고, 그 위에서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어 춤을 추는 선수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열정과 환희가 가득하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서 춤을 선보이고 있다.

장애라는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아름다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댄스스포츠 선수 채수민의 이야기다. 1996년생인 그는 젊은 패기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국 휠체어 댄스스포츠계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파트너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플로어를 누비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스포츠 그 이상의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채수민의 춤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가 마주하고 있는 신체적 조건과 이를 극복해 낸 과정에 있다. 그는 가슴 아래로 감각과 운동 능력이 소실된 척수 장애를 안고 있다. 실용무용을 전공하던 대학교 3학년 시절 7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낙상사고를 겪게 되어 가슴 아래가 마비되었다. 춤을 추는 데 다양하게 사용되는 코어 근육, 즉 허리와 복부의 힘을 통해 스스로 자세를 유지하거나 동작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국제적으로 정한 운동기능, 장애 정도에 따라 클래스1과 클래스2로 나뉜다. 허리 중심을 못 잡고, 골반을 쓰지 못하는 경우 클래스1에 해당한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서 두 다리를 고정시키는 벨트를 보여주고 있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서 경기용 휠체어를 소개하고 있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서 경기용 휠체어의 보조 바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서 경기용 휠체어의 등받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장애 등급을 매겨주는 기관이 해외에만 있기 때문에 고심 끝에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선택했어도 등급을 받아 대회에 출전하려면 힘들게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가야 한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클래스1 댄스스포츠 선수는 채 선수를 포함해 전국에 약 6명뿐이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인정하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물리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경기용 휠체어의 등받이를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더 두껍게 특수 제작하는 것도 그 방법의 하나였다. 두꺼운 등받이와 함께 상체를 단단히 고정한 복대는 마비된 흉부 아래를 든든하게 지탱해주었고, 덕분에 그는 춤을 추는 동안 상체가 무너지지 않고 마치 똑바로 서 있는 듯한, 당당하고 곧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채 선수의 원동력은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다. 사고 이후 중환자실에서도 간호사들과 노래를 부르며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20대 이후에 갑자기 변해버린 현실에 좌절하기는커녕 새로운 길과 방향을 찾아냈다. 이는 곧 프라하 2021 장애인 댄스스포츠 국제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 도착해 휠체어를 꺼내고 있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 도착해 휠체어에 타기 위해 직접 제작한 의자를 차 문틈에 끼워넣고 있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 도착해 휠체어에 타기 위해 손으로 다리를 들어올리고 있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채수민 댄스스포츠 선수가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채 선수는 자신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다친 사람은 부모님의 걱정으로 여러 활동에 소극적으로 되어버리고, 너무 늦은 나이에 다친 사람은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시절이 너무 길어 추억할 것들이 많아 힘들다고 한다. 20대 초반에 장애가 생긴 자신은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낼 수도 있었고, 비장애인으로서의 추억을 양분 삼아 현재를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채 선수는 스포츠 지도자 자격증도 따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도 활발히 이어나가며 바쁘게 살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춤도 추는데, 일상생활은 못 할 게 뭐 있냐고 모두에게 보여주는 게 목표다. 비록 사고가 그의 육체적 자유는 빼앗았을지 몰라도 삶을 향한 열정의 불꽃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