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권력을 가지면 폭력에 기대게 될까. 국가는 왜 정의를 표방하면서도 전쟁과 억압을 반복하는가. 정말 인간은 증오와 보복 없이는 세상을 바꿀 수 없는가. 20세기 인류는 제국주의 식민 지배와 이념적 학살을 경험하며 치를 떨었다. 오직 군사력과 총칼만이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던 그 야만의 시대에 한 남자가 전혀 다른 방식의 저항을 들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군대도, 무기도 없이 오직 맨몸과 양심, 그리고 영혼의 힘만으로 제국에 맞선 그의 이름은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였다.
그는 흔히 ‘비폭력의 성인’이라는 박제된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현실 정치의 한 복판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정치와 영성을 결코 분리할 수 없다고 믿었던 힌두교 수행자였다. 간디는 인간 내면의 영적 도덕성이 변하지 않으면 그 어떤 독립도 또 다른 폭력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라고 경고하며, 냉혹한 권력 투쟁의 영역에 도덕이 스며들 수 있는지를 평생 실험했다.
◆폭력의 시대, 영혼의 힘으로 제국에 맞선 거인
간디는 1869년 인도 서부 구자라트 지방의 독실한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재상을 배출할 만큼 유복했고, 어머니는 철저한 채식주의와 단식, 영적 정화를 실천하는 엄격한 힌두교도였다. 간디는 조혼 풍습으로 13세에 결혼했으나, 아내와 아들 하나를 남겨두고 19세에 홀로 영국의 명문 법률학교인 이너 템플(Inner Temple)에서 유학하며 엘리트 변호사로 성장했다.
그의 삶을 바꾼 전환점은 1893년 가족과 함께 이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찾아왔다. 인도인 소송 사건을 맡기 위해 이주한 남아공에서 그는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기차 1등석에서 강제로 쫓겨난 모멸적 사건을 겪으며, 제국주의 문명의 야만성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20년간 남아공에 체류하며 억압적인 인종차별에 맞서 상대를 파괴하지 않는 독창적인 저항 방식을 실천해 나갔다.
간디가 제창하고 평생 실천한 세 가지 핵심 이념은 아힘사(Ahimsa, 불살생·비폭력), 브라마차리아(Brahmacharya, 성적 금욕·정화),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진리 파지·영혼의 힘)인데, 이는 모두 힌두교의 유구한 종교적·철학적 전통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아힘사는 모든 생명체 안에 우주의 신성인 ‘아트만(Atman)’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타인을 해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 신성을 해치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브라마차리아는 성적 에너지를 분출하지 않고 내면으로 수렴할 때, 그것이 영적 깨달음을 얻기 위한 거대한 정신적 에너지(오자스, Ojas)로 전환된다고 믿었다. 흔히 ‘비폭력 저항’을 뜻하는 간디의 신조어 ‘사티아그라하’는 ‘진리’를 뜻하는 사티아(Satya)와 ‘붙잡음’을 뜻하는 아그라하(Agraha)의 합성어로, 힌두교 고대 경전인 ‘우파니샤드’는 “오직 진리만이 승리한다”고 가르치며, 진리를 우주의 근본 원리이자 신(God) 자체로 동치시킨다. 힌두교도에게 진리를 추구하고 고수하는 것은 삶의 가장 숭고한 다르마(Dharma, 도덕적 의무)이다.
여기서 잠시, 힌두교란 어떤 종교일까. 힌두교는 단일한 교조나 성전 대신 인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 다양한 신앙 체계의 거대한 융합체이다. 이 종교는 우주의 근본 원리인 브라흐만(Brahman)과 개인의 영혼인 아트만(Atman)이 본래 하나라는 깨달음을 통해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신앙인들은 자신이 지은 행위의 결과인 업(Karma)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고 믿으며, 인생의 각 단계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적·종교적 의무인 다르마를 지키는 것을 삶의 지표로 삼는다. 힌두교의 예배 의식과 신앙 형태는 다신교적 면모를 띠어 우주의 창조신 브라흐마,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 등 수많은 신 중 자신이 선택한 신을 정성껏 섬기는 박티(Bhakti, 절대적 헌신)가 중심을 이룬다. 신도들은 매일 집안의 제단이나 사원에서 신상에게 꽃과 음식을 바치고 불빛을 흔드는 푸자(Puja, 예배의식)를 행하며, 몸과 마음을 통제하는 요가(Yoga)와 고행, 그리고 갠지스강 같은 성지 순례를 통해 영혼을 정화하고 신성과 합일하고자 노력한다.
◆힌두 신앙의 유산과 보편적 양심이 낳은 ‘사티아그라하’
간디는 이러한 힌두 신앙을 온몸으로 체화했으며, 그의 사상과 영성의 정수는 바로 ‘사티아그라하’에 집약되어 있다. 간디에게 사티아그라하는 소극적 불복종이 아닌 적극적인 ‘진리의 힘’이자 ‘영혼의 힘’을 의미했다. 간디는 폭력이 증오를 낳는다는 우주의 인과율을 신뢰했고, “수단이 목적을 결정한다”고 확신했다. 폭력이라는 오염된 수단으로 얻은 신생 국가 역시 필연적으로 폭력적인 괴물이 될 뿐이기에, 적의 양심을 깨워 친구로 변화시키는 것만이 진정한 승리라고 보았다.
이 영적 원리는 힌두교의 불살생 신앙인 ‘아힘사’에만 머물지 않았다. 간디는 매일 아침 신약성경의 ‘산상수훈’을 읽으며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커다란 영적 충격을 받았다. 또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저서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속에 있다’를 읽고 깊은 교감을 나누며, 종교의 외피를 넘어선 보편적 양심의 힘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의 목적은 인도의 자유였고, 그의 전략은 평화였으며, 그의 무기는 인류애였다.’ 훗날 영화 ‘간디’의 포스터를 장식하기도 한 이 문구처럼 21년간의 남아공 생활을 접고, 1915년 고국 인도에 영웅으로 귀환한 간디는 영국 식민 통치에 맞선 범국민적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영국 제국을 무너뜨리고 3억 5천만 명의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일어선 이 한 명의 비범한 인간은 일부 지식인과 엘리트에 국한되어 있던 민족운동을 노동자와 농민, 불가촉천민, 여성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이 참여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전국적 대중운동’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영국의 소금 독점법에 반대해 결행한 400km 구간의 ‘소금 행진’에서 민중들은 무자비한 매질 앞에서도 맨몸으로 맞서며 제국의 도덕적 정당성을 뒤흔들었다. 또한 그가 손수 물레를 돌려 인도의 전통 의복을 짜 입은 것은 식민지 경제 구조를 거부하고 인간의 신성한 노동으로 자립하겠다는 거룩한 경제적 저항이었다.
간디는 안으로 철저한 금욕과 절제를 고수하는 수도자였으며, 37세에는 성적 금욕(브라마차리아)을 실천했다. 그의 완고한 보수적 여성관과 카스트 제도의 근본적 폐지 대신 신분 간 화합을 우선시한 정치적 판단은 현대 사회학적 관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국가 간의 거대한 이권이 충돌하는 정치 영역 한복판에 ‘개인의 도덕과 도덕적 의무’라는 영성적 질문을 가장 무겁게 던진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철저한 영성적 통찰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선언이 바로 그가 경고한 ‘일곱 가지 사회악’이다. 간디는 사회를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인 죄악으로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거래 △인류애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 △원칙 없는 정치를 꼽았다. 정치를 권력 획득의 기술이나 계산으로 보지 않고 인간 영혼의 성숙도를 증명하는 무대로 이해했던 그였기에 이렇듯 도덕이 거세된 사회 구조의 야만성을 매섭게 꾸짖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피로 물든 분열 속에서도 스러지지 않은 평화의 유산
또한 그는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가 살아있는 상태”라고 확신했다. 강자가 총칼로 약자를 굴복시켜 만든 고요함은 가짜 평화일 뿐이며, 오직 신성한 양심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때에만 참된 평화가 도래한다는 영적 선언이었다. 간디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로 널리 알려진 표현이 있다.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면 결국 온 세상이 눈먼 사람이 되고 만다.” 그는 또 “세상에서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먼저 그 변화가 당신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삶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의 관심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있지 않았다. 인간의 양심을 일깨워 함께 변화하는 데 있었다. 그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고 보았다. 총으로 얻은 승리는 결국 더 큰 증오를 남길 수 있다고 단언한 것이다.
간디의 영적 투쟁은 마침내 1947년 인도의 독립이라는 결실을 보았으나, 역사는 그에게 잔인한 아픔을 안겼다. 영국이 물러나면서 힌두교도 중심의 인도가 세워지면 차별받을 것을 우려한 이슬람 지도자들이 “이슬람교도들만의 나라를 따로 세우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1947년 8월 인도 대륙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피를 흘리며 갈라지게 된다(당시 파키스탄에 속했던 동파키스탄은 훗날 방글라데시로 독립한다.). 평생 종교 간의 화합과 공존을 위해 단식기도를 올렸던 간디는 깊은 절망과 영적 고통에 휩싸였다.
그의 비극은 영국의 총칼이 아닌, 동족의 증오로부터 찾아왔다. 1948년 1월 30일, 이슬람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간디를 배신자로 여긴 한 극단적 힌두 민족주의자의 총탄에 의해 간디는 생을 마감했다. 그는 쓰러지는 순간에도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어 살인자를 용서한다는 사인을 보냈고, 그의 입에서는 평생 붙들었던 신의 이름 “헤람(오, 신이시여)”이 흘러나왔다. 그의 영적 투쟁은 훗날 마틴 루서 킹의 비폭력 민권운동과 넬슨 만델라의 화해 정치로 계승되며 세계사에 거대한 평화의 족적을 남겼다.
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 시대는 달라져도 사람은 여전히 사랑과 진리, 정의와 희망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인간을 끝내 일으켜 세운 것은 언제나 영혼의 힘이었다. 그 갈망이 있는 한, 인류의 영성은 앞으로도 새로운 시대를 비추는 등불로 남을 것이다.
[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목표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3> 노자-“세상을 거슬러 흐르지 말라”
<4> 석가모니-“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
<5> 조로아스터-“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6> 예수-“사랑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7> 무함마드-“신앙은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인간 내면에도 제국은 존재한다”
<9> 토마스 아퀴나스-“신과 이성은 화해할 수 있는가”
<10> 마르틴 루터-“양심은 교황보다 강한가”
<11> 존 웨슬리-“대중 속으로 들어간 종교”
<12> 라마크리슈나-“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가”
<13> 달라이 라마 14세-“인간은 증오 없이 저항할 수 있는가”
<14> 문선명·한학자-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15> 간디-“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