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의감성엽서] 걷는 사람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닌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여중 시절에 차비를 아껴 책을 사려고 토요일 오후엔 매번 걸어서 집으로 갔다. 수영에서 수정동까진 꽤 먼 길이었지만 이것저것 구경하고, 힘들면 쉬어가면서 걸었다. 그 먼 길을 혼자 걸어오면서 걷는다는 건 참 외롭고 고단은 하나 결코 심심한 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러다 미술 시간에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을 보았다. 아주 먼 길을 걸어와 고단해 보이지만, 그래도 계속 앞으로 걷고 있는 사람. 그 작품을 보았을 때, 마치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나는 걷는 게 좋고, 걷는 사람이 좋다. 하여 ‘걷는 사람’을 조각한 자코메티도 엄청 좋아한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쓴 박태원도 좋아하고, 그의 단짝인 이상 시인도 좋아한다. 그 둘은 성격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서울) 거리를 지독하게 걸어 다니며 문학과 예술과 비운을 논했던 조선 문단 최고의 단짝이다. 내게도 박태원이나 이상 같은 그런 단짝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내가 부족한 탓에 그런 친구가 없어 무엇이든 혼자 해야 하므로 늘 연습이 필요했다. 하여 걷는 연습을 하기 위해 무더운 여름날, 통영 한달살이를 하러 이곳으로 왔다. 바다를 너무너무 좋아하니까 이왕이면 우리나라에서 바다색이 가장 예쁘다는 통영. 그 바다를 지척에 두고 바라보고 바라보면서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땡볕에 혼자 통영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지만 심심하거나 외롭진 않았다. 걷는 사람들이 늘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하루에 40~50km는 거뜬히 해치우며 자신의 고질병인 우울증 너머로 보이는 세상의 가장 작고 소외되고 소박한 것들을 눈에 담아 주옥같은 ‘산책자’를 쓴 로베르트 발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많이 걸었던(평생을 지구 일곱 바퀴 반을 돈 거리)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파리의 밤거리를 하염없이 헤맨 고독한 늑대, 찰스 디킨스와 고흐, 걷고 걸으면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쓴 장자크 루소, 날마다 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영화배우 유해진, 아주 귀여운(?)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나이’ 아르튀르 랭보와 노동효, 매일매일 산책하면서 내게 식물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아름답게 들려준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리고 지금쯤 내가 왜 홍제천에 안 나타나지? 궁금해하고 있을 홍제천 오리들과 왜가리, 쇠백로들. 그들이 늘 나와 함께 있었으니 전혀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즐겁게 돌아다녀 내가 나에게 놀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통영에서의 한 달을 낮에는 통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으로 보냈다. 이제 며칠 후면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정말 그리울 것이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내 마음속 평화로 자리 잡고 있어 나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서울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걸어 다닐 것이고,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되어본 적 없는 산책자, 걷는 사람이 되리라.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처럼 제대로 늘 걷는 사람!
 

김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