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논란 장기화 우려에 속도전… 추가 개정 가능성 열어둬 [형소법 개정 후폭풍]

국무회의 통과 안팎

“국회 판단 존중” 입장 재확인
민생·경제 현안 집중 택한 듯
“한 번에 종결되는 개혁 없어
부족한 점 있다면 신속 보완”
警 막대한 권한 통제 등 과제

野, 李 재가 소식에 강력 반발
장동혁 “피해자 울리는 악법”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한 우려에도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 입법 판단을 존중하고 검찰개혁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더 이어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보완수사권을 엄격한 조건 아래 일부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을 돌려보낼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시행 과정에서 수사 공백이나 경찰 권한 비대화 등의 문제가 드러나면 후속 입법과 제도 정비를 통해 보완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검사의 직접 수사 권한과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4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됐다. 개정안은 검찰이 공소청으로 개편되는 오는 10월 2일부터 시행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뉴스1

◆국회 판단 존중…논란 장기화 차단

이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엄격한 조건 아래 일부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지난 6월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까지 다 봉쇄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엄격한 조건 아래 아주 최소한만 (보완수사권을 허용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면 안 되고 구더기가 생길 가능성을 다 막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그런데도 도저히 못 막겠으면 그때 가서 장 담그기를 포기해도 늦지 않다”고 비유했다. 검찰의 권한 남용 가능성은 철저히 통제하되 예외적인 수사 공백에 대비할 장치는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다만 이 대통령은 자신의 의견을 정부안으로 관철하기보다는 국회 논의 결과를 따르겠다는 입장도 함께 유지해 왔다. 그는 당시 “제 판단은 있지만 우리 입장을 관철하기보다는 국회에 넘겼으니 국회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검찰 수사권 문제에 대해서도 “너무 예민하고 또 많이 오염된 주제”라며 “정치적 슬로건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런 데에 우리가 끼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논쟁을 불러오거나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논의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보완수사권에 관한 개인적 견해와 별개로 국회가 장기간 논의해 내린 결론을 존중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검찰개혁 문제가 다시 여야 간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대통령까지 정치적 공방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권 폐지를 둘러싼 논쟁을 일단 매듭짓고 민생·경제 현안으로 국정의 중심을 옮기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례 이재명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한 회의에서 “새로운 수사 시스템의 정착 과정에서 국민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수사 공정성과 수사 역량 제고에 작은 빈틈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원 선임기자

◆완결 아닌 출발…보완 가능성 열어둬

이 대통령은 형소법 개정안 의결이 형사사법체계 개혁의 완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새로운 수사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보고 문제가 확인되면 추가 개정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개혁은 가죽을 벗긴다는 의미다. 한 번의 제도 변경으로 쉽게 종결되는 그런 개혁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원래 취지대로 변경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세심하게 점검하고,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신속하고 과감하게 그리고 철저히 보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큰 과제는 경찰 권한에 대한 통제장치 마련이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이 폐지되면 경찰이 대부분의 수사를 맡게 되는 만큼 수사 지연이나 부실수사를 어떻게 바로잡을지, 거대 경찰 조직의 권한 남용을 어떻게 견제할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대통령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그럼 검찰이 아닌 경찰은 괜찮을까 하는 문제가 있다”며 경찰이 과거 독재 통치에 악용된 전례를 언급했다. 이어 “이제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과연 앞으로는 안전한 것일까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높은 책임감과 윤리의식으로 엄정하게,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하고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형소법 개정안은 예정대로 시행하되 경찰 통제와 수사 역량 보강, 범죄 피해자 보호 문제는 후속 입법으로 보완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검찰 수사권 폐지라는 제도적 전환은 마무리됐지만 새로운 수사체계가 국민 보호라는 목적에 맞게 작동할지는 이후 제도 설계와 시행 과정에 달렸다는 평가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4일 국회에서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野 “李, 스스로 위해 악법 서명” 반발

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해온 국민의힘은 형소법 개정안 의결에 강하게 반발했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강력범죄 피해자와 많은 국민들이 절박하게 반대했지만,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재판을 통째로 지우기 위해 피해자를 울리는 악법에 서명했다”며 “국민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국민의 인권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될 것”이라며 수사 공백과 피해자 보호 약화를 우려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대통령은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포기했다”며 “정작 벗겨낸 것은 국민 안전을 위한 최후의 보호막”이라고 주장했다. 박충권 수석대변인은 “정부는 더 이상의 사법 붕괴를 막기 위해 지금이라도 실효성 있는 후속 입법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