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통증을 줄여주지만 중독 위험이 큰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를 대체할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암성 통증이나 수술 후 통증 등에 널리 사용되지만 중독과 의존성, 호흡억제 등의 부작용으로 세계 각국이 사용을 줄일 대안을 찾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잇달아 신약 개발에 뛰어든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중독 없는 진통제’ 시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5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비마약성 진통제는 중추신경계 대신 말초신경계 등 통증 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을 표적으로 삼아 진통 효과를 내면서도 오피오이드의 가장 큰 문제점인 중독과 의존성 위험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최근 비마약성 진통제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잇달아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미국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이하 버텍스)의 경구용 비마약성 진통제 ‘저나백스(성분명 수제트리진)’다.
저나백스는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통로(NaV1.8)를 선택적으로 차단해 통증이 뇌까지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약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이후 출시 1년도 되지 않아 약 9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시장에서도 가능성을 확인했다.
버텍스는 현재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과 요천추 신경근병증 등 만성 통증 질환에도 사용할 수 있는지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시장 선점에 나섰다.
일라이 릴리는 지난해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사 사이트원 테라퓨틱스를 최대 10억달러 규모에 인수한 데 이어 올해도 관련 기업인 4E 테라퓨틱스를 추가로 품었다.
비아트리스와 라티고 바이오테라퓨틱스 등도 차세대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을 추진 중이다.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비보존제약은 국산 38호 신약인 비마약성 진통제 ‘어나프라주(오피란제린)’를 앞세워 미국 임상 3상과 해외 제약사에 개발·판매 권리를 넘기는 계약도 추진하고 있다.
관계사 비보존 역시 경구용 후보물질 ‘VVZ-2471’을 개발 중이며, 대웅제약 자회사 아이엔테라퓨틱스는 NaV1.7 채널을 표적으로 하는 후보물질 ‘아네라트리진’을 개발해 75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지투지바이오는 장기지속형 약물전달 플랫폼을 활용해 수술 후 통증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약효 지속 시간을 기존보다 크게 늘려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업계에서는 비마약성 진통제가 단기간에 오피오이드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강력한 진통 효과와 의료현장의 처방 관행, 약가 등의 장벽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오피오이드 중독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면서 각국 규제당국이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만큼 시장의 중심축은 점차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FDA가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에 패스트트랙과 우선심사 등 다양한 지원 정책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마약성 진통제가 단기간에 마약성 진통제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중독 위험을 줄인 치료제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여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중심이 비마약성 진통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비마약성 진통제 시장은 연평균 7.69% 성장해 2030년에는 약 703억 달러(약 97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