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같은 해 탄생한 제헌 국회는 제1호 법률로 정부조직법을 제정했다. 그때는 한반도가 군국주의 일본의 엄혹한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된 직후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일원이던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은 일본군 무장 해제 분담을 명분 삼아 38선을 그었다.
이후 마치 남북한의 국경선처럼 변질된 38선 이남에 살고 있던 인구는 약 2000만명에 불과했다. 자연히 정부 조직도 단출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아래에 내무부 외무부 국방부 재무부 법무부 문교부 농림부 상공부 사회부 교통부 체신부 총무처 공보처 법제처 기획처 총 15개 중앙 부처로 출범했다.
오늘날 내무부는 행정안전부, 외무부는 외교부, 재무부는 재정경제부 등으로 진작 문패를 바꿔 달았다. 그 시절이나 현재나 똑같은 명칭으로 존속하는 부처는 국방부와 법무부뿐이다.
법제처의 경우 지금과 이름은 같으나 80년 가까운 지난 세월 동안 폐지되거나 타 부처에 흡수됐다가 부활하는 등 극심한 부침을 겪은 것이 현실이다. 1948년 닻을 올린 한국 행정부의 ‘원년 멤버’로서 아직도 건재한 기구는 국방부·법무부 단둘이라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두 부처 공무원들은 이 같은 역사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에 검찰청을 거느린 법무부는 오랫동안 ‘실세 부처’로 군림해왔다. 흔히 예산권 등을 쥔 경제 부처가 더 강할 것이라고 여기기 쉬우나, 일단 검찰이 지닌 수사권 및 수사지휘권의 위력을 몸소 겪어 본 이들은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다.
과거 기획재정부(현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가 법무부·검찰의 예산 배정 요구에 난색을 표하자 검사들이 보인 반응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거기 수사를 좀 해야 되겠군.” 다른 부처들과 달리 법무부 실·국장은 검사장(차관급)이다 보니 그 위세가 참으로 대단했다. 여러 출입처를 옮겨다니며 ‘법무부 직원은 너무 건방지다’라는 타 부처 공무원의 힐난을 참 많이도 들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사의를 표했으나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일 뜻이 없는 모양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한 뒤 정 장관은 언론에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의지도 없다”는 심경을 밝혔다. 청와대가 사표 수리 불가 방침을 통보한 뒤로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며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 듯하다. 조선 시대 벼슬아치들이 임금에게 사직 의사를 밝힐 때 썼다는 ‘칭병불출’(稱病不出: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아니함)이란 용어가 떠올라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정 장관의 몸 상태 악화도, 보완수사 폐지 후 범죄 피해자들에게 닥칠 고통도 모두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