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노소영, 37년 중 21년 ‘쇼윈도 부부’

이혼 잔혹사… 15일 재상고 시한

2005년부터 한 지붕 별거생활
노, 최 사면 반대로 극한 갈등
최, 2015년 편지로 공개 결별
내주 9440억 재산분할 분수령
“가장 깊은 고독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찾아온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인 가브리엘 마르셀은 ‘쇼윈도 부부’의 내면을 이처럼 표현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배우자를 도구화하지만, 정작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부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불행하다는 의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뉴스1

최근 국내 이혼 소송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액(9440억원) 판결로 화제를 모은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부부도 그럴 듯하다. 대법원 상고시한(15일)을 앞두고 있지만, 21년 동안 남남처럼 지내 온 두 사람의 쇼윈도 부부 생활도 곧 마침표를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세기의 결혼식’으로 대중의 이목을 끈 두 사람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악화일로의 관계를 걷게 됐다. 그 첫 시작은 최 회장의 모친인 박계희 여사와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잇따른 별세였다.

 

최 회장은 박 여사와 최 선대회장이 각각 1997년과 1998년 세상을 등지면서 삶의 커다란 기둥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을 느꼈다. 최 회장은 이혼소송 당시 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에서 “부모의 잇따른 사망에 슬픔과 충격을 겪었지만, 노 관장에게 기대했던 충분한 위로와 지지를 얻지 못해 큰 상실감을 느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 회장은 2003년 3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또 한 번의 위기를 겪는다. 최 회장은 이혼소장을 통해 “슬픔과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배우자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인데 가치관 차이 등으로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며 토로했다. 가장 가까워야 할 배우자로부터 어떠한 위안도 얻지 못한 것이 관계 소멸의 결정타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2005년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다. 이때부터 최 회장과 노 관장은 자택 내에서 침실과 생활 동선을 완전히 분리하는 ‘한 지붕 별거’에 들어갔다. ‘법적 부부’라는 꼬리표만 달렸을 뿐 관계는 소멸했던 셈이다.



최 회장은 노 관장이 2011년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청와대에 청탁한 정황 등 부부간의 최소한의 신뢰마저 깨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 관장 측은 수사 청탁 의혹 자체를 부인했고, 오히려 노 관장이 옥바라지를 하며 가족을 추슬렀다고 반박했다.

특히, 201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을 앞두고 노 관장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최 회장의 사면을 반대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는 등 서로의 불신과 갈등은 극에 달했다. 다만 사면 반대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 회장은 광복절 특사로 나왔다. 최 회장은 작심한 듯, 그해 12월 본지에 보낸 친필 편지로 혼외자의 존재와 이혼 의사를 대중에 공개하며 결별을 공식화했다.

이후 2017년 최 회장의 이혼 조정 신청으로 시작된 재판은 2019년 12월 노 관장이 맞소송을 내고 절반에 달하는 SK의 주식 분할을 요구하면서 재산분할 싸움으로 확전됐다.

결국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이혼 청구와 위자료 부분을 확정하면서 두 사람의 혼인 관계는 실질적 파탄 이후 21년 만에 끝이 났다.

남은 것은 재산분할이다. 지난달 24일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944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상고시한까지 양측이 상고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된다.

법조계에서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과정에서 불거진 ‘실체 없는 혼인 관계’를 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유익한지에 대한 질문이 나온다. 대법원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유책주의’를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