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국가유산 ‘해우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시인 정호승의 시 ‘선암사’의 한 구절이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장편 희곡 ‘바알’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가 이 지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곳은/언제나 화장실이었다/그곳은, 인간에게 만족을 주는 장소…/그곳은 분명, 혼자서도/첫날밤을 치른 사람처럼 행복할 수 있는, 경이로운 곳’.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는 곳’이라는 뜻의 해우소(解憂所)는 사찰의 전통 화장실을 일컫는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한국전쟁 후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스님(1892∼1982)이 처음 이 말을 썼다고 한다. 국가유산청은 영월 보덕사 해우소와 합천 해인사 국일암 해우소, 순천 선암사 측간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건립 후 100년 넘게 원래 자리와 형태를 지키고 있으며, 여전히 사용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세 곳 모두 문 없이 가슴 높이의 칸막이를 두는 개방형 구조인데, 눈높이에 가는 나무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운 살창 덕분에 바람과 햇빛이 잘 통하고 안쪽은 적당히 가려준다. 세상 시름을 털어내고 위안을 얻을 만하다.



유엔은 2013년부터 전 세계 위생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행동 고취 목적으로 11월19일을 ‘세계 화장실의 날’로 지정하고 기념해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류의 14%인 10억명은 구덩이 화장실을 사용 중이다. 또 20억명은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처지인 데다, 이 가운데 6억7300만명은 숲속 등에서 직접 해결한다고 한다. 배설물로 오염된 식수원을 사용해야 하는 이들에게 화장실은 ‘행복’과는 동떨어진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국내에서도 화장실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끼니를 때우는 경비원의 열악한 현실이 종종 보도로 전해지곤 한다. 얼마 전에는 공사장 화장실이 근로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신축 아파트에서 인분이 발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해우소의 고즈넉한 울림과 대비되는 ‘화장실 문화 선진국’의 안타까운 이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