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말을 걸어요”…7억달러 오타니가 허리를 숙이는 이유

‘운’과 ‘인간성’까지 습관으로 만든 오타니
161㎞ 강속구보다 빛난 건 ‘태도의 힘’

일본 이와테현의 작은 도시 오슈. 사회인 야구 선수였던 한 아버지는 스물다섯에 어깨를 다쳐 그라운드를 떠났다. 못다 이룬 꿈은 접었지만 야구의 즐거움만은 막내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그의 막내아들이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를 뒤흔들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32)다.

 

아버지는 아들과 캐치볼을 할 때마다 규칙을 정했다. 공을 주고받기 전과 후엔 반드시 인사할 것, 늘 주변에 감사할 것. 막내가 응석받이로 자라는 것을 원치 않았다.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가 그라운드에 들어서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열여섯의 설계도엔 ‘운’도 있었다

 

오타니가 열여섯이 되던 해, 종이 한 장에 자신의 미래를 빼곡히 적었다. 

 

가로 아홉 칸, 세로 아홉 칸. 한가운데 가장 큰 목표를 적고, 그 주변 여덟 칸을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로 채운다. 그리고 그 여덟 가지를 다시 구체적인 실천 과제로 쪼갠다. ‘만다라트’ 계획표다. 불교의 만다라(曼陀羅)에서 이름을 따왔다. 오타니는 고교 시절 사사키 히로시 감독의 지도로 이 표를 작성했다.

 

오타니가 작성한 만다라트. 

 

한가운데에는 ‘8개 구단 드래프트 1순위’를, 둘레 여덟 칸에는 몸만들기, 제구, 구위, 변화구, 시속 160㎞ 등을 적었다. 여기까지는 야구 소년다운 목표였다.

 

그런데 뜻밖의 두 칸이 있었다. ‘운(運)’과 ‘인간성’이었다.

 

‘운’을 끌어오기 위한 실천 과제는 더 눈길을 끈다. 쓰레기 줍기, 인사하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물건을 소중히 쓰기 등이었다. 오타니의 인터뷰와 발언을 엮은 책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오타니 쇼헤이의 120가지 사고’에는 그가 쓰레기를 줍는 이유가 담겨 있다.

 

“남이 버린 운을 줍는다고 생각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그냥 지나칠 때면 쓰레기가 “그냥 가는 거냐, 너는 이대로가 좋은 거냐”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고도 했다.

 

하나만 해라?…오타니는 둘 다 택했다

 

오타니는 종이에 적은 목표를 하나씩 현실로 옮겼다. 고교 1학년 봄부터 타자로 두각을 나타냈고 가을에는 투수로도 마운드에 섰다. 치는 것도, 던지는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합니다.” 

 

시속 160㎞를 던지겠다는 목표를 두고 주변에서는 말도 안 된다며 비웃었다. 하지만 그런 시선은 오히려 오타니의 오기를 키웠다.

 

프로 진출을 앞두고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 2013년 오타니는 곧장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대신 투타 겸업을 보장한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했다.

 

당시 야구계의 상식은 ‘하나만 해라’였다. 투수와 타자를 함께하면 체력 부담이 크고 어느 쪽에서도 정상에 오르기 어렵다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투수가 안 된다거나 타자가 안 된다거나, 단정짓기 싫었습니다.” 

 

오타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한 시즌 두 자릿수 승리와 두 자릿수 홈런을 동시에 기록했다.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이도류’가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50홈런-50도루를 기록했다는 내용의 스포츠신문 호외판. AP뉴시스

 

161㎞ 던지고 50홈런…상식을 바꾸다

 

2018년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도 회의론은 따라붙었다. 다르빗슈 유 등 선배 선수들도 투수와 타자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오타니에게 우선순위는 분명했다. 돈보다 이도류를 이어가는 것이 먼저였다. 결국 LA 에인절스와 계약했다.

 

“되냐 안 되냐 따지기보다, 그냥 하면서 생각하거나 하고 나서 생각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나았습니다.”

 

결과는 곧 따라왔다. 오타니는 첫해부터 투수로 공을 던지고 타자로 홈런을 때리며 아메리칸리그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마운드에서는 시속 100마일(약 161㎞)에 이르는 강속구를 뿌렸고 타석에서는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들과 홈런 경쟁을 벌였다.

 

오타니가 2024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WS)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AP뉴시스

 

2023년 겨울에는 LA 다저스와 10년 7억달러(당시 약 9200억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이듬해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50홈런·50도루를 달성했다.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태며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에도 올랐다.

 

지난해에는 월드시리즈 2연패를 이끌며 3년 연속 MVP를 거머쥐었고 수술로 미뤘던 투수 복귀까지 이뤄냈다.

 

오타니가 경기 중 그라운드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있다. SNS 갈무리. 

 

괴물이 된 뒤에도 변하지 않는 것

 

만다라트에 적었던 또 하나의 목표는 ‘인간성’이었다.

 

오타니는 경기 중 그라운드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 모습으로 여러 차례 화제가 됐다. 타석에 들어서거나 심판과 마주할 때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익숙하다. 고교 시절에는 이를 ‘운’을 끌어오는 방법이라고 적었지만, 쓰레기를 줍고 인사를 건네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는 결국 그의 됨됨이를 보여준다.

 

괴물 오타니는 그렇게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