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군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농장에도 감염이 확인된 개체만 선별적으로 처분하는 ‘제한적 살처분’을 도입한다. 지금까지 시·군에서 구제역이 최초로 발생한 농장은 한 마리만 양성 판정을 받아도 바이러스 특성과 확산 정도를 초기에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워 예방적 차원에서 양성 판정을 받지 않은 개체도 모두 살처분하는 보수적인 원칙이 적용됐다.
이로 인해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는 살처분 이후 사육 기반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정부도 살처분 보상금과 방역비용으로 매년 수십억~수백억원의 재정을 투입해야 했다. 이에 정부는 올해 안에 구제역 긴급행동지침(SOP)과 방역실시요령 고시 개정을 추진해 최초 발생 농가라 할지라도 백신접종 유형과 임상증상 유무 확인, 백신항체 형성 정도 등을 고려해 양성 개체만 처분한다는 방침이다.
◆최초 발생 농장도 조건부 ‘부분 살처분’
◆22만여두 살처분·1179억원… 예방적 처분 한계
지금까지 시·군 내 최초 발생 농장은 전 두수 살처분 원칙을 적용했다. 발생 초기에는 바이러스 혈청형과 백신 효과, 농장 내 감염 범위, 주변 농장으로의 확산 여부 등을 신속하게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양성 개체를 일일이 선별하는 과정에서 방역이 지연될 경우 초동방역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방역당국은 추가 확산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가장 보수적인 방역 원칙을 유지했다.
이러한 반복된 대규모 예방적 살처분으로 농가 피해와 정부의 재정부담은 누적됐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했던 2014~2015년 동절기 동안 196농가에 185건의 구제역이 확인돼 총 17만1128두의 가축이 살처분됐다. 이에 따른 축산농가 보상금과 살처분 등에 소요된 예산은 635억원에 달했다.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던 2020~2022년, 2024년을 제외하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311농가에서 250건의 구제역이 확인돼 총 22만8686두가 살처분됐다. 이에 따른 재정소요액은 1179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10농가에서 9건의 구제역이 발생해 이미 664두가 살처분됐다. 올해 재정소요액은 아직 산정 중이다.
양성 개체만을 대상으로 한 살처분은 최초 발생 이후 추가로 발생한 축산농가에서 일부 활용되기도 했으나, 바이러스 유형과 전파 양상이 확인되고 해당 지역 모든 축산농가에 긴급 백신 접종이 완료되는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진행됐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전남도 영암·무안군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하자 최초 발생 농장을 제외하고 양성축만 선별해 살처분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구제역 발생 농가는 예방적 살처분이 진행됐다.
정부는 예천 사례를 토대로 올해 안에 구제역 방역실시요령과 SOP 개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국내 구제역 방역은 시·군 내 최초 발생 농장도 위험도를 평가해 살처분 범위를 결정하는 체계로 전환될 예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위험도를 고려한 ‘제한적 살처분’이 도입되면 백신 접종이 정착된 상황에서 방역 효과는 유지하면서도 불필요한 살처분에 따른 농가 피해, 정부 재정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