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는 거대한 황금기였다. 지금처럼 기획사의 체계적인 시스템이나 대형 자본이 주도하기보다, 현장의 실력 있는 세션 연주자와 코러스들이 음악의 뼈대를 완성하던 시절이다. 그 최전선에서 이름 없이 음반의 숨결을 불어넣었던 코러스 세션 팀 ‘빈칸채우기’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작곡가 윤종신이 방송에서 “90년대 가요계 히트곡의 70~80%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됐다”고 증언할 만큼, 이들은 수많은 명곡의 음정 뒤편을 지탱하는 유일무이한 존재들이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빅마마의 신연아는 당시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뽐내며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신연아는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의 규모를 가늠케 하는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했다. 대학 등록금이 180만원 선이던 시절, 그녀가 올리던 월수입은 무려 1000만원에 달했다. 업계에서 ‘월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유다. 녹음이 끝날 때마다 현금 봉투로 곧바로 정산이 이루어졌지만, 쉴 틈 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은행에 갈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 결과 작업실 책상 위에는 입금되지 못한 현금 봉투가 산처럼 쌓여갔다.
현장 스케줄의 압박은 그야말로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한 달 전부터 일정이 빽빽하게 짜여 있어 단 1분의 지연도 허용되지 않았다. 녹음실에서는 메인 가수의 작업이 길어지기 일쑤였지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그녀를 오랫동안 묶어둘 수는 없었다. 오죽하면 피로에 지친 그녀를 본 프로듀서가 “가수는 잠깐 나가 있고 코러스부터 먼저 녹음해서 끝내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이처럼 피말리는 현장을 누비며 업계 최정상을 지킨 그녀는 수많은 명곡의 깊이를 빚어냈다.
실제로 신연아가 참여한 곡은 대한민국 가요계의 역사 그 자체다. DJ DOC의 ‘여름이야기’, 젝스키스의 ‘폼생폼사’, 샵의 ‘텔미 텔미’, 베이비복스의 ‘겟 업’과 ‘킬러’, 싸이의 ‘새’,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 god의 ‘촛불 하나’, 박지윤의 ‘성인식’, 이정현의 ‘와’와 ‘바꿔’ 등 시대를 관통하는 메가 히트곡들의 코러스 라인이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쳤다.
특히 핑클의 데뷔곡 ‘블루레인’ 녹음 당시 일화는 유명하다. 수십 년이 흘러 방송에서 다시 그녀와 호흡을 맞춘 이효리는 “신연아 선배한테 너무 쫄아서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화음을 넣는데 바람이 장풍처럼 오는 것 같았다”며 당시의 압도적인 아우라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럼에도 신연아는 이 같은 화려한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다. 자신이 마치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 자판기”처럼 소모된다는 회의감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기득권을 뒤로한 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파리의 C.I.M 음악학교 재즈학과에서 음악의 본질을 파고들며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이후 귀국하여 YG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과 손잡고 직접 실력파 멤버들을 규합해 탄생시킨 팀이 바로 대한민국 보컬 그룹의 지형도를 바꾼 ‘빅마마’다.
당시 최고 주가를 달리며 고수익을 올리던 그녀에게 동료 음악인들은 만류의 목소리를 높였다. 가수 이적은 빅마마 데뷔 소식을 듣고 “가수보다 코러스로 훨씬 잘나가는데 굳이 왜 고생스러운 길을 택하려 하느냐”며 진심으로 말리기도 했다. 안정적인 고소득과 탄탄한 입지를 포기하고,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실력으로 평가받는 보컬 그룹의 멤버로 뛰어드는 것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연아는 쉽사리 주어지는 행운이나 과거의 영광에 기대지 않았다. 빅마마 활동 이후에도 홀로 음악적 내공을 더해갔으며, 현재는 호원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으로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현장에서 체화한 수십 년의 실전 노하우와 철저한 자기 관리를 바탕으로 K-POP 학과를 신설하고, 직접 걸그룹을 기획·제작하는 등 교육자이자 크리에이터로서의 영역을 단단하게 다져오고 있다.
대중은 흔히 자극적인 가십과 눈앞의 수치에 반응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가치는 결국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두둑했던 돈봉투를 과감히 내려놓고 매 순간 음악적 본질을 향해 질주해 온 신연아의 행보는, 요행을 바라는 시대에 실력과 태도가 무엇을 남기는지 보여주는 선명한 증거다. 신연아는 스스로 쌓아 올린 실력이라는 절대적 지표로 아티스트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몸소 증명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