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사랑과 오점

가족들조차 사기꾼으로 여기는
사고뭉치 아버지는 인생의 오점
석탄 가루 뒤집어쓴 것 같지만
그래도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

솔 벨로 ‘은접시’(‘세계문학 단편선, 솔 벨로1’에 수록, 김현우 옮김, 현대문학)

요즘같이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을 견디는 방법이라면 나에겐 한 가지밖에 없는 듯하다. 땀이 날까, 가만히 앉아 책 읽기. 어머니 돌보기 외에 그간 못 읽은 책들을 쌓아두곤 피서하는 중이다. 어떤 좋은 작품을 만나 배우고 말하고 싶어지게 될까, 설레면서. 두 권짜리 솔 벨로의 자선 소설집을 읽었다. 한 편 한 편의 중·단편들이 장편과도 맞먹는 서사와 “정서적 타격감”을 주는. 아직 여름이 한창인데 어쩌면 이 계절에 나를 가장 뒤흔든 책으로 이 소설집들을 손꼽게 되지 않을까. 그중에서 단편 ‘은접시’를.

조경란 소설가

일요일 아침. 시카고에 사는 자영업자이자 육십대 화자 우디는 자신의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종소리를 들었다. 보통 그는 매주 이 시간이면 아파트를 나가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지금은 아직 침대에 있는데 그건 지난 화요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아니 평소에도 책임감 많은 우디는 “너무 바빠서 자신의 감정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가 혼자 교회 종소리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내면에 무언가가 쏟아져 들어온 기분이 든다. 대단히 불편한, 커다란 상심이.



우디는 목사인 삼촌의 영향으로 신학교에 다녔다. 별일이 없었다면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이 바라는 대로 목사가 되었을 것이다. 뭐든 편법으로 처리해 가족들조차 사기꾼으로 여기지만 아들에게는 솔직하고 유쾌하며 자유로운 삶을 쫓는 사람으로 보이는 아버지가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가족을 떠날 거라 이제부턴 네가 가장이라고. 우디는 겨우 열네 살이었다. 아버지는 한번 결심하면 막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떠날 수 있게 아르바이트로 모든 돈 좀 빌려달라고. 돈, 아버지에겐 항상 돈의 문제가 있었다.

우디는 같은 문제에 처한 아버지의 요구로 “곤란한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받아내곤 교회 후원자 부인의 집에 찾아간다. 눈보라가 치는 날. 이 기억 또한 지금은 흡사 그의 영혼을 두드리는 듯 들리는 종소리가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종소리가 만들어내는 원들이 커지며 지난 화요일 병실에서 본 아버지와 자신 안에 남은 생의 오점을 더 또렷하게 떠올리게 한다. 그날, 부인 집에서 아버지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제목에서 알 수 있지 않은가. 자기를 신뢰하는 부인의 은접시를 훔치는 아버지를 눈앞에서 봤을 때 우디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부자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진다. 한 페이지가 넘도록. 그래서 이 장면은 죄와 윤리의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는 걸까.

은접시 일로 우디는 신학교에서 퇴출당해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본인 쪽으로 되돌려” 놓은 듯한 방식으로. 소설의 시간은 여전히 일요일 아침. 종소리가 사라지고 그 “침묵의 웅덩이” 속에서 그는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자기 인생에서 오점이었던 면들을 살피는 일도 했다. 그러자 오늘 하나 더 남은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려졌다. 애도. 많은 소설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자식이 부모를 애도하는 장면을 봐오지 않았는가. 쉬운 화해나 단절이 아닌 방식, 솔 벨로의 그 독창성이 놀라워서 여기에 미리 밝히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듯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끝내고 싶어 정맥주사를 뽑아버리려는 아버지에게 육십대 아들이 한 행동. 그제야 독자는 알게 될 터이다. 후원자 집에서의 몸싸움 장면을 작가가 왜 그토록 세부적으로 그렸는가를.

197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솔 벨로가 2년 후 처음 발표한 소설이 ‘은접시’이다. 가족, 정체성, 용서, 종교와 윤리 등 그가 평생 탐구한 주제를 가장 압축적인 형태로 담아낸 단편이라는 평가를 받은. 내가 감탄한 점은 다른 데도 있다. 돈을 꾸러 부인 집으로 가는 기차 안, 작가는 아들의 시선을 기관실의 작업부들 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몸의 대부분에 석탄 가루를 뒤집어썼지만 곳곳에 반짝이는 부분도 있었다.” 곳곳에 석탄 가루를 뒤집어쓴 데도 있으나 곳곳에는 분명 반짝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