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서역에는 커피를 만드는 로봇이 있다. 키오스크 화면에 커피를 주문하면, 유리 부스 안의 로봇팔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커피 한 잔을 생산해낸다. 이렇게 만든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이 3500원. 무인매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법 비싸게 느껴지지만, 로봇 한 대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수긍되는 가격이기도 하다.
반면 골목마다 쉽게 볼 수 있는 노란색 간판의 저가 카페에선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이 1500∼2500원 선이다. 점심시간처럼 주문이 밀려드는 때에는 좁은 매장 안의 직원들이 기계처럼 커피를 내리지만, 커피 한 잔의 가격은 로봇 카페보다 저렴하다. 로봇 카페와 저가 카페 모두 커피의 맛이나 서비스가 아닌, ‘생산’에 초점을 두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권구성 경제부 기자
아직 사람의 발길이 더 많이 닿는 곳은 저가 카페다. 로봇 카페보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 맛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크지 않아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인건비가 계속해서 오르고, 로봇의 생산 비용이 내려간다면 가격은 역전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가서도 로봇이 아닌 사람이 만든 커피를 찾게 될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다.
역사적으로 기술혁신은 높은 인건비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18세기 영국은 높은 인건비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혁명을 일으키며 대량생산의 토대를 닦았다. 수익모델이 마땅치 않은 인공지능(AI)에 빅테크 기업들의 천문학적 투자가 이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초기 비용이 크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량생산을 통한 경쟁에서의 얘기다. 오늘날 흔히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다. 에스프레소 문화를 뿌리내린 것은 이탈리아지만, 커피에 있어서 종주국보다 자부심 강한 곳이 호주다. 호주에서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같은 매장이라도 바리스타가 누구인지에 따라 커피의 맛과 가치를 다르게 판단하고, 카페라는 공간 역시 커피를 마시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스타벅스가 호주에서는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스타트업의 임원은 한국의 카페 문화를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면 매뉴얼에 맞게 빠른 속도로 만들어 주지만, 바리스타에게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커피를 빠른 속도로 대량생산하는 능력은 극대화했지만, 그것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로봇과의 차별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AI 열풍 속에 기업과 개인이 앞다퉈 AI 사용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사실 AI는 목적이 아닌 수단일 뿐이다. 커피를 내리는 도구와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호주의 카페가 여전히 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기술로는 커피 한 잔에 담지 못하는 무언가가 차별화를 이룬 결과다. 결국 본질은 로봇이나 AI가 아닌, 커피 그 자체에 있다. 산업혁명이 그랬듯, 대량생산의 경쟁에서 사람은 기술을 이기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