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인형 [詩의 뜨락]

함민복

우리들 애칭은 스카이댄서야
개업하는 곳에서 자주 판을 벌이지
살도 뼈도 근육도 다 바람인
바람이 없으면 일어서지도 못하는
순수 혈통 바람의 자식들이야
엉덩이 허리 가슴의 곡선도 버렸어
옹직 바람이 통하기 편한 몸매지
내부의 바람이 우리들의 신명이야
외부를 지향하는 힘으로
팔을 흔들고 목을 돌리고 허리를 꺾지
외부의 바람에 의존하는
나무들의 춤과는 격이 달라
바람이 심한 날은 오히려
춤사위가 흐트러질까 싶어 아예 쉬지
스텝은 없어 스텝은 파멸이야
음악도 상대도 필요 없어
가급적 나만을 생각하며
혼자 즐기면 되는 거지
바람 춤을 출 때만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어
동작이 단순하다고 흉보지 마
앞뒤 양면의 얼굴로 보고 있으니까
이건 수직으로만 솟아오르는 춤이야
잘 봐.
우리들 춤이 무엇을 닮았는지


―시집 ‘물빛인쇄소’(창비) 수록

 

●함민복
△1962년 충주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우울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등 발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권태응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