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권력/윌리엄 G 하월·테리 M 모/이철희 옮김/메디치미디어/2만8000원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미국 사회를 갈라놓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나면 미국은 다시 우리가 알던 모습으로 돌아갈까. 유감스럽게도 답은 ‘아니다’로 기운다. 일생을 대통령학에 매진한 미국 주류 정치학자 2인은 트럼프의 스트롱맨 통치를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40여년간 축적된 제도 변화의 산물로 규정한다.
1787년 미국을 건국한 선구자들은 독재를 막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약하게 설계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사회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행정국가가 팽창했고, 대통령들은 이 거대한 관료 기구를 장악하기 위해 정책 결정권을 백악관으로 끌어오고 요직을 충성파로 채웠다.
미국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게 된 결정적 분기점은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이다. 에드윈 미즈가 이끈 레이건의 법무부는 ‘단일행정부이론(UET)’을 전가의 보도로 만들어냈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일방적 권한과 행정부 전체에 대한 최고 권위를 부여했다고 보는 이 법이론은 성문법과 삼권분립이라는 전통적 제약을 사실상 거부했다. 이론은 이후 보수 법학자들에 의해 정교해졌고,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포로 고문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이후 우파 포퓰리즘이 결합하면서 궤적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저자들은 2010년 티파티의 등장과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을 거치며 반체제 성향의 지지 기반이 공화당을 장악했고, 이들이 민주적 규범과 절차에 구애받지 않는 지도자를 갈망했다고 분석한다. 트럼프가 판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짜인 판 위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이 궤적이 남긴 가장 기묘한 유산은 진영의 자리바꿈이다. 제한 정부와 개인의 자유를 신봉해온 세력이 무제한에 가까운 대통령 권력을 해법으로 택했고, 강한 정부를 옹호해온 세력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굴레를 지키는 자리에 서게 됐다. 저자들은 보수가 행정국가를 무너뜨릴 유일한 무기로 대통령 권력을 발견한 순간부터 이 역설이 예정돼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벼려진 무기는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대통령직에 실린 권한은 다음 주인에게 그대로 상속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방식에 대한 통념도 이 책은 수정한다. 한 번의 쿠데타나 극적인 붕괴가 아니라, 합법의 외피를 쓴 작은 상처들이 누적되면서 체제는 서서히 형해화된다. 법무부의 사유화, 의회의 무력화, 직업 관료의 축출과 충성파 충원, 패배한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 하나하나는 견딜 만해 보이는 조치들이 모여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지난다.
그렇다면 이 흐름을 누가 멈춰 세울 수 있을까. 저자들은 일반 대중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부터 스트롱맨 행보를 보였음에도 2024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수천만 명의 미국인에게 민주주의는 안중에도 없다. 게다가 자신의 권위주의를 대놓고 드러내는 대통령 후보에게 열정을 느끼며 기꺼이 투표한다. 이것이 차갑고 아픈 현실이다.”
미국 대중이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정치 시스템의 견제와 균형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폭주하는 대통령에 맞설 의회의 최고 무기는 탄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원에서 두 차례 탄핵소추됐지만 상원에서 모두 무죄 평결을 받았다. 상원의 탄핵 인용에는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 만큼 공화당 의석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성립이 어렵다. 두 저자는 사법부도 스트롱맨의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헌법이 권력 배분에 관한 내용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데다 지나치게 간결하고, 법원은 대통령에게 지나칠 정도로 고분고분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대통령학 전문가인 저자들의 결론은 비관적이다. “미국 민주주의가 엄중한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도 “다른 정치학자들의 책처럼 개혁안을 제시하고 긍정적인 어조로 끝맺으면 좋겠지만 특효약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사람들은 줄곧 어떤 경우에도 이 땅에서는 민주주의의 붕괴가 불가능할 것이라 믿어온 듯하다. 하지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심지어 어쩌면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위협이 이제 미국의 현실이다.” 제도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한번 넓혀진 권력의 문은 스스로 닫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