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누르기 방지법’ 시행도 전에 재개정될 처지

정부안 맞서 與서 개정안 발의

당초 상장사 1000여 곳이 대상
정부, 적용대상 130곳으로 축소
13반기 중 2번만 PBR 관리해도
대주주, 조세 회피 가능하게 돼
재산가액 하한선도 낮춰 문제

與 “평가 하한 순자산가치 80%”
상속·증여 실제 가치 반영 요구

정부가 내놓은 ‘주가누르기 방지법’이 적용 대상을 과도하게 축소하고 조세 회피 ‘구멍’을 방치했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공개 직후부터 재개정될 처지에 놓였다. 상장사 전반의 기업가치 제고를 겨냥했던 당초 논의와 달리 실제 과세망에 드는 기업이 쪼그라들어 제도 실효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느슨해진 기준·좁아진 과세망



6일 국회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이훈기 의원이 전날 대표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안’이 접수돼 상임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해당 법안은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이 주축이 돼 공동 발의했다. 3일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통해 주가누르기 방지 대책을 내놓은 지 불과 이틀 만에 여당이 독자적인 개정안을 발의하며 맞불을 놓은 것이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재정경제부 주가누르기 방지법 전면재검토 촉구 및 주가누르기 방지법 대표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주가누르기는 기업의 최대주주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내야 할 상속·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게 유지하는 편법적 행위다. 현행 세법상 상장주식은 상속·증여 전후 두 달간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주가가 낮을수록 대주주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정부는 이런 맹점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한다고 보고 세제개편안을 통해 과세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안은 다만 최근 13반기 중 누적 12반기 동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업종별 하위 25%(코스피) 및 10%(코스닥)인 기업만을 심사 대상으로 삼았다. 시가총액을 장부상 순자산으로 나눈 PBR이 0.8배 미만인 상장사 1000여곳을 폭넓게 겨냥한 민주당 이소영 의원안과 달리, 정부안의 적용 대상은 130곳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특히 13반기 중 2반기만 PBR 순위를 관리해 기준선을 벗어나면 과세망을 피할 수 있어 대주주에게 조세 회피 구멍을 열어줬다는 비판이 거세다.

과세 기준인 재산가액 하한선이 낮아진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정부안은 장기 저평가 기업의 재산가액을 현행 평가액의 130%와 최대 6년6개월 평균 주가 중 높은 금액으로 정한다. 최종 평가액이 주당 순자산가치의 80%를 밑돌지 않도록 설계한 원안 대비 하한선이 낮아진 구조다. 장기간 주가가 억눌린 기업은 과거 평균 주가나 현행 평가액에 30%를 가산한 금액 자체가 낮아 제도 도입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정부안, 개혁 의지 후퇴”

이에 전날 발의된 개정안은 상속·증여세 평가 하한 기준을 주가가 아닌 ‘세법상 순자산가액’의 80%로 명확히 했다. 또 자회사·손자회사 상장주식에도 동일 방식을 다단계로 적용해 지배구조에 따른 가치 훼손을 막고, 경영난을 겪는 기업에는 예외를 두되 미실현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일률적인 20% 할증 평가는 폐지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상속·증여 시점의 실제 기업가치를 반영하는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정부안대로라면 과세망에 드는 코스피 상장사가 80여곳에 불과해 대다수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심사망을 빠져나간다고 지적했다. 13반기 중 두 반기만 호실적 발표 시점에 배당 증가나 자기주식 매입 등으로 주가를 부양하면 제재를 회피할 수 있어 법안의 기교성만 부각됐다는 것이다. 포럼은 “세제개편안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매우 컸는데 정부안은 개혁 의지의 후퇴로 인식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가치투자 전문 운용사인 VIP자산운용도 순자산가치를 최소 평가 기준으로 도입하는 처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대 6년6개월에 달하는 장기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산업 환경 변화나 사업 구조 재편 등을 반영하지 못해 현재 기업가치를 왜곡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비상장주식 평가 방식 적용에 따른 실무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순자산 기준 5% 미만 자회사는 장부가액을 선택하도록 절차를 간소화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저평가를 통한 절세 유인 자체를 없애야 대주주가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에 나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이번 입법이 단순히 세제 개편에 그치지 않고, 주가를 낮출수록 세금이 줄어드는 역설적 상황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