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 팔던 청년에서 100만 관객 가수로…임영웅 데뷔 10년의 여정

‘미스터트롯’ 진부터 단독 공연 누적 관객 100만명 눈앞…기록 넘어 새로운 가요 문화를 만든 10년
8일 가수 임영웅이 데뷔 10주년을 맞는다. 임영웅 인스타그램 캡처

 

2017년 겨울, 한 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팔던 청년이 있었다. KBS ‘아침마당-도전 꿈의 무대’에서 두 번 연속 고배를 마신 뒤였다. 정해진 스케줄이 없어 아르바이트조차 마음 편히 잡을 수 없었던 그는,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가수로 불러주기만 하면 달려갈 수 있도록 노점 장사를 택했다. 그 청년이 오는 8일 데뷔 10주년을 맞는다. 가수 임영웅이다. 오는 9월이면 단독 공연 누적 관객 100만명이라는, 국내 솔로 가수로는 보기 드문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 ‘나이키 상처’ 품던 포천 소년, 트로트에서 길을 찾다

 

시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그가 세 살이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경기 포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홀로 아들을 키웠다.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녹슨 쇠 양동이에 부딪혀 왼쪽 뺨을 30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큰 사고를 겪었다. 의사로부터 “신경이 죽어 입이 제자리를 못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머니에게 “내 얼굴에는 나이키가 있다”고 웃어 보이며 위로하는 속 깊은 아들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 임영웅 인스타그랩 캡처

 

꿈도 여러 번 방향을 바꿨다. 초등학생 땐 축구선수를 꿈꿨고, 고등학생 땐 태권도장에 다녔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무렵, 음악에 관심이 생겨 친구를 따라 실용음악학원 입학시험을 봤다가 홀로 붙어 그때부터 가수를 목표로 했다. 처음엔 발라드 가수를 꿈꿔 실용음악과에 진학했지만 곧바로 가수가 되긴 어려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포천의 트로트 대회에 출전해 1등을 하면서 트로트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후 대학 선배의 지인을 통해 현 소속사 대표를 만난 그는 2016년 8월, 싱글 ‘미워요’로 데뷔했다. 하지만 큰 반응은 없었다. ‘아침마당-도전 꿈의 무대’에도 도전했지만 5연승을 해야 졸업하는 무대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가수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돈을 들여 무대에 서야 했고, 월세가 몇 달 치나 밀릴 정도로 생활은 어려웠다. 그때 선택한 것이 버킷리스트였던 군고구마 장사였다. 그러던 중 아침마당에서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전쟁같이 무대를 준비하며 신곡 ‘계단말고 엘리베이터’로 마침내 5연승을 완성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의 인생을 바꾼 무대는 2020년 TV조선 ‘미스터트롯’이었다. 실시간 국민 투표 773만여표 가운데 약 25%를 얻어 초대 진(眞)에 올랐으며, 문자 폭주로 결과 발표가 지연되는 초유의 방송사고까지 낳았다. 결승전 생방송 당일은 아버지의 기일이기도 했다. 임영웅은 우승 소감에서 “엄마 혼자 남겨둬 미안하다고 선물을 준 거라고 생각하겠다”며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해 많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2020년 임영웅이 ‘내일은 미스터트롯’ 진(眞) 우승 소감에서 아버지를 언급하는 모습. 유튜브 채널 ‘굴머루’ 캡처

 

◆ CD 포기·잔디 보호…기록 넘어 가치를 증명하다

 

이후 임영웅의 6년은 기록의 연속이었다. 지난 3월에는 멜론 누적 스트리밍 134억9000만회를 달성하며 1위에 올라섰고, 정규 1집 ‘IM HERO’ 초동 판매량 100만장을 기록했다. 4년간 81회 콘서트를 진행하며 누적 관객 91만5000여명을 동원했고 오는 9월에는 단독 공연 누적 관객 100만명 달성도 앞두고 있다.

 

지난 2월 부산에서 개최된 전국투어 콘서트 ‘IM HERO’에서 임영웅이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임영웅 인스타그램 캡처

 

기록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가요계에 던진 화두다. 지난해 정규 2집 ‘IM HERO 2’를 발매했을 때는 CD 앨범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음반 판매량보다 팬들의 부담을 덜고, 환경을 우선하겠다는 선택이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공연에서는 잔디 보호를 위해 그라운드석을 운영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광고업계에서는 임영웅(히어로)과 경제(이코노믹스)를 합친 ‘히어로노믹스’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그의 경제적 파급력을 주목했다. 그의 성공은 광고계를 넘어 학계에서도 연구 대상이 됐다. 한국대중음악학회는 임영웅의 인기가 사회문화적 현상이라며 창법과 발음, 장르 소화력 등을 중심으로 인기 요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전국투어 콘서트 ‘IM HERO’ in 부산 공연 장면. 임영웅 인스타그램 캡처

 

◆ 아티스트와 팬덤이 함께 만든 선한 영향력

 

기록을 쌓아온 10년 동안, 임영웅이 꾸준히 이어온 또 하나의 발자취는 나눔이다. 군고구마를 팔며 생계를 이어가던 때에도 ‘아침마당’ 우승 상품인 상품권 1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스타가 된 뒤에도 그의 원칙은 달라지지 않았다. 2021년에는 “여러분의 소중한 마음이 더 좋은 곳에 쓰이길 희망한다”며 손편지를 제외한 모든 서포트와 선물을 정중히 사양했고, 지난 6월 생일에는 취약계층 환자를 위해 팬덤 ‘영웅시대’ 이름으로 2억원을 기부했다. 그의 조용한 나눔은 어느새 팬덤의 문화가 됐다.

 

데뷔 10주년을 앞두고도 영웅시대는 전국 곳곳에서 나눔을 이어갔다. 입양가정과 결식아동, 장애인, 지역사회를 위한 성금이 부산과 순천, 안동, 평택 등 각지에서 잇따랐다. 임영웅이 보여준 나눔의 가치는 팬덤의 자발적인 기부 문화로 이어지며 또 다른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2021년 임영웅 소속사가 팬카페에 공지한 내용. 다음 카페 ‘영웅시대’ 캡처

 

임영웅은 이제 트로트를 넘어 발라드와 록, 포크, EDM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있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 ‘산골총각 영웅’을 통해 인간적인 매력도 보여줬으며, 데뷔 1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잡지 커버에도 도전했다.

 

“저는 노래하는 순간이 가장 즐거운 것 같아요.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조금 더 가까이 더 많은 분께 다가가고 싶은 마음. 그리고 지난 10년을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전하고 싶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데뷔 후 처음으로 매거진 커버에 도전합니다.”

 

군고구마 수레를 지키며 무대를 기다리던 청년은 이제 전국의 팬들이 기다리는 가수가 됐다. 숱한 좌절 끝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기록과 나눔으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온 임영웅. 10년을 달려온 그의 시간은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