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장강명의 신작 ‘서성이다’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뇌종양 발병 앞에서 한 남자가 보낸 사흘을 담은 소설이다. 실제 장 작가가 아내의 교모세포종 발병 당시 겪은 첫 사흘의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옮긴 기록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물과 사건을 허구로 재구성한 오토픽션이다.
어느 토요일 저녁,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 이지수는 몸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자다가 구토한 아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남편 안시찬은 119를 부른다. 병원 검사 결과는 뇌종양이었다.
안시찬은 중환자실 면회와 의료진 상담, 가족들과의 소통을 도맡으며 이사 잔금과 대출, 아내 명의 통장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아내의 생사를 걱정하는 순간에도 일상 대소사를 처리하는 자신을 보며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의심하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짓눌린다. 17년을 함께 산 아내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도 밀려온다.
소설의 출발점은 장 작가가 실제로 겪은 사건이다. 소설 속 안시찬은 소설가이자 방송인, 칼럼니스트이며 아내 이지수는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을 운영한다. 실제 소설가이자 방송인, 칼럼니스트인 장강명의 아내 김새섬(김혜정)은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의 창업자이자 대표다. 김 대표는 지난해 4월 어느 토요일 자택에서 응급실로 이송돼 악성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은 뒤 뇌수술을 했다.
이후 부부는 서로의 대화와 목소리를 남기기로 했다. 지난해 6월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를 시작해 매일 10∼20분가량의 대화를 편집 없이 게시했다. 발병 당시의 혼란과 치료 과정,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부터 여행기, ‘그믐’ 창업기, 음식점·빵집 방문기까지 부부가 함께한 시간을 기록했다. 김 대표는 올해 6월 팟캐스트를 통해 병 재발 소식을 알렸고, 두 번째 뇌수술을 준비하기 위해 같은 달 말 팟캐스트 시즌1을 마무리했다.
현실과 닮았지만 ‘서성이다’는 르포가 아니다. 장 작가는 “이 소설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밝혔다. 안시찬이 겪는 감정은 실제 경험에서 가져왔지만, 사건과 주변 인물들은 소설적 상상력으로 새롭게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출판사 현대문학에 따르면 집필 당시 장 작가는 다른 소설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아내의 발병을 겪은 뒤 자신이 겪은 바를 오토픽션으로 쓰기로 방향을 바꿨다. 이 소설을 김 대표도 읽었고, 두 사람은 소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소설에서 안시찬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식의 서사를 거부한다. 누군가의 병이 다른 사람의 깨달음을 위한 재료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찾는다.
무신론자인 안시찬은 소설 말미에서 ‘고통의 신’을 향해 기도한다. 처음에는 아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달라고 빌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신경교종에 걸리기를 빈다.
장 작가는 김 대표가 두 번째 뇌수술을 받은 뒤 병실에서 휴대폰으로 쓴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종교가 있으신 분들은 제 아내 김새섬 그믐 대표를 위해 빌어주십시오. 염치없게 부탁드립니다.” 현실의 고통과 소설의 언어 사이에서 작가는 오래 서성였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이 부부를 위해 조용히 기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