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폴리실리콘 15% 관세… 美 태양광 공급망 재편 시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반도체와 태양광 패널의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과 관련 파생상품에 최저수입가격을 도입하고, 폴리실리콘 파생상품에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포고령에 서명했다.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에너지원인 태양광 발전의 설치 비용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한편, 미국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한국 기업에는 수혜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조치는 핵심 공급망을 미국으로 되돌리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

◆태양광 패널 핵심 소재 수입 제한 조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포고령에서 “폴리실리콘 파생상품의 수입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훼손할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해당 수입품에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 폴리실리콘의 최저수입가격은 1㎏당 21달러로, 폴리실리콘 잉곳(원통형 덩어리)과 웨이퍼는 1㎏당 100달러로 각각 설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미국 내 폴리실리콘 및 관련 제품 생산시설을 신·증설하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인센티브 프로그램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조치는 120일 뒤인 오는 12월 4일 미 동부시간 오전 0시 1분부터 발효된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7월 폴리실리콘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개시했으며, 이번 포고령은 그 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려진 조치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관세 등 적절한 조치를 통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조항을 활용해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구리, 의약품 등에도 관세를 부과해 왔다.

 

폴리실리콘은 태양광 발전용 태양전지 패널과 컴퓨터 칩 등 반도체 제조에 널리 쓰이는 핵심 소재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 목적을 강조했지만, 폴리실리콘의 최대 수요처는 태양광 산업이다. 미국은 한때 세계 최대 폴리실리콘 생산국이었지만, 중국 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바탕으로 중국이 현재 세계 공급량의 약 90%를 생산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생산 비중은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 태양광 업체들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과 저가 판매를 문제 삼아 여러 차례 무역소송에서 승소했고, 미국 정부는 특정 국가산 태양광 패널과 폴리실리콘에 관세를 부과해 왔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은 제3국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뒤 이를 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으로 관세를 우회해 왔다. 이 때문에 미국은 중국뿐 아니라 대만과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서도 잇따라 관세를 부과했다.

 

지난 5월 미국 태양광 업체 8곳이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에티오피아에서 조립한 태양광 제품에 대한 조사를 정부에 요청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에티오피아가 미국의 관세를 우회하기 위한 새로운 수출 거점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필리핀과 중동, 이집트·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미국 업체들은 특정 국가별로 관세를 부과하는 기존 방식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법률 비용만 늘린다고 비판해 왔으며, 이번 조치는 이 같은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내 업계 환영

 

이번 조치를 지지한 무역단체 ‘번영하는 미국을 위한 연합’의 존 투미 회장은 “새로운 글로벌 관세는 폴리실리콘과 태양광 업계가 수십 년 동안 겪어온 끝없는 ‘두더지 잡기(Whac-a-Mole)’ 상황을 끝낼 것”이라며 “미국이 단 한 번의 조치로 태양광 공급망 전체를 보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는 태양광 패널을 조립하는 공장이 다수 들어섰지만, 실리콘 웨이퍼와 태양전지 셀 등 핵심 부품은 여전히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공화당은 지난해 태양광 발전사업자가 미국산 패널을 설치할 경우 제공되던 세액공제는 폐지했지만, 미국 내 태양광 공장 건설을 장려하는 세액공제는 유지했다.

 

이번 조치는 태양광 발전 설치 비용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태양광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전력원이다. 다만 미국 내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일부 기업들은 이번 조치를 환영했다. 한화큐셀의 앤디 박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는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백악관의 결정은 미국 태양광 제조업의 현재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폴리실리콘부터 완성 패널까지 전 공급망을 미국 내로 이전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진전시키는 균형 잡힌 조치”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