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참모진의 우려에도 영유아 백신 접종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조사하는 행정명령을 추진하고 있다. 과학계가 대규모 연구를 통해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거듭 결론 내렸지만, 백악관이 ‘백신 음모론’에 다시 불을 붙이는 모양새다.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백신과 자폐증 문제를 다루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행정명령의 구체적인 범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영유아 백신과 자폐증 관련 연구가 주요 대상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쿠시 데사이 백악관 부대변인은 서면 성명을 통해 “백신 접종 관련 우려를 무시당하거나 조롱당해 온 셀 수 없이 많은 부모를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과학에 기반해 대통령의 우선 과제를 실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백신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원의 제동을 받은 바 있다. 지난 3월 매사추세츠 연방법원은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추진한 아동 백신 권고 축소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 개편의 핵심 조치에 잠정 제동을 걸었다. 재판부는 정부가 수십 년간 따라온 백신 전문가 자문 절차를 충분한 설명 없이 건너뛰고, 자문위원 교체 과정에서도 전문성과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위법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제동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백신 정책을 계속 밀어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29일 미국의 아동 백신 권고 체계를 다른 선진국의 관행에 맞게 재조정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미국 어린이들에게 권고되는 백신의 종류와 접종 일정 전반을 재검토하게 됐다.
이 같은 움직임은 백악관 내부의 정치적 우려와도 엇갈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백악관 정치 참모들은 케네디 장관의 백신 정책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이들은 백신 대신 약값과 건강보험, 식품 정책 등 상대적으로 대중적 지지가 높은 현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케네디 장관에게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더 적극적으로 조사하라고 요구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케네디 장관과의 대화에서 자폐증 원인을 규명하는 문제를 주요 보건정책 우선순위로 삼을 것을 거듭 주문했다. 백신 문제를 중간선거 전까지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려는 참모진의 판단과 달리 대통령이 직접 관련 정책을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백신과 자폐증의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과학계의 결론은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백신안전성자문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010년부터 2025년 8월까지 발표된 31개 주요 연구와 5개 메타분석을 재검토한 뒤 백신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유발한다는 인과관계의 증거가 없다고 재확인했다. 연관성을 제시한 일부 연구에 대해서는 연구방법상 중대한 문제가 있고 증거 수준도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백신 접종 방식과 자폐증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백악관 내부의 선거 전략과 법원의 제동, 기존 과학적 합의에도 대통령이 관련 문제를 계속 최우선 과제로 밀어붙이면서 백신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시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