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 단계에서 피해가 발생한 장소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해당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수사기관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강제추행 범죄피해자 A씨는 7일 한국피해자학회 특별학술대회에서 자신이 받았던 경찰수사에 대해 이 같이 문제를 지적했다. 피고인 측은 경찰수사를 토대로 A씨의 기억과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A씨 사건은 검찰 보완수사 요구를 통해서야 녹음파일 원본, 카카오톡 대화 캡처, 관련 지인의 연락처, 병원 진료기록 등 사실관계 확인이 이뤄질 수 있었다.
A씨는 “보완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제 사건은 객관적인 증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채 피해자의 진술과 주장만으로 구성된 사건으로 남아 기소로 이어지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검찰 폐지 이후 사건 종결 걱정하는 피해자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10월2일부터 검찰의 수사권이 사라지면서 성폭력, 관계성범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실 수사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경찰 초기 수사단계에서 부실한 부분이 있어도 검사의 보완수사를 통해 이를 발견하고 바로잡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경찰 단계에서 부실하게 사건이 처리될 경우 이를 되돌릴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여당은 아동학대, 가정폭력, 성범죄, 아동성범죄, 스토킹, 장애인학대, 노인학대 등 사회적 약자 대상 7대 범죄에 대해 전건송치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형소법을 보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범죄에 대한 수사는 예외 없이 공소청 검사에 넘겨 2차 판단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 단체들은 초기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졌을 경우 검사가 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개혁위) 정영훈 변호사는 지난 6일 피해자 보호단체들과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경찰 단계에서) 사건이 충실하게 조사돼야만 전건송치가 되더라도 검사 쪽에서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경제적 사정 등을 고려해 국선변호사가 수사 단계부터 배정돼 이의신청 등이 이뤄질 수 있지만 이 같은 제도에 대한 안내도 현재는 부실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토킹범죄 피해자 B씨는 “범죄피해평가제도 안내를 받은 피해자가 단 한명도 없다”며 “국선변호인 선임이 가능한 것도 안내가 없어 법적 조력 없이 혼란한 피해자가 경찰조사를 받는다”고 털어놨다.
국선변호사의 역할도 피해자의 현 상황과 법정에서 필요한 증언 등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동행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경제력이 있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피해자만 수사 과정부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푸념도 나온다. 반면 피의자의 경우에는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서부터 권리보장을 위해 국선변호사가 의무적으로 선정된다.
◆ 전문가들 “피해자 제도 수정 불가피”
김혜경 계명대 교수는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와 수사기관의 다양화로 인해 범죄피해자 관련 제도들의 수정이 불가피한 시점”이라며 “검찰단계에서 수행되는 형사조정제도를 수사를 하지 않는 공소청에 그대로 남겨둘 것인지, 중수청과 공수처 및 경찰로 다양화되는 시점에서 범죄피해자 피해신고를 단일창구로 할 것인지, 기관 간 이첩이나 이관으로 인한 범죄피해자의 중복 피해 진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 산재해 있는 범죄피해자 관련 현안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도 형소법 개정 이후 피해자 권리보장과 피해회복을 위한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다. 경찰청에는 여성청소년국이 신설돼 정책과 수사 기능이 통합된다. 여청국 내 피해자보호과가 관련 정책을 맡게 된다.
개혁위 차원에서도 피해자 단체들로부터 관련 문제를 청취하고 개선방안을 논의 중이다. 개혁위 정 변호사는 “여성청소년 전문 수사관 확보, 수사과정에서의 (상담사 등) 신뢰 관계인 동석, 112 신고했을 때 진술내용 보관기한 연장,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 피해자가 외국인인 경우 통역문제 등 여러 디테일한 문제가 나와서 적극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