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비상…보험료 인상 앞서 ‘법정 국고지원’ 의무부터 지켜질까

정부가 최근 건강보험료 인상안 발표를 연기한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에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법정 국고지원 의무부터 제대로 이행할지 주목된다. 건보 재정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으로 국민에 부담을 전가하기 전에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내 국민건강보험공단. 뉴시스

7일 현행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 등에 따르면 정부는 매년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직접 지원해야 한다. 일반회계에서 14%, 담배부담금으로 조성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각각 분담하는 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2007년부터 2024년까지 18년간 법정 비율을 준수한 적이 없다. 해당 기간 발생한 누적 미지급금만 약 2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고 지원이 매년 미달하는 건 정부의 과소 추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보험료 인상률만 반영하는 방식으로 예상 수입액을 낮춰 잡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정부는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을 실제보다 9조8000억원가량 적게 추계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정부가 지원 기준에 있는 ‘상당하는’이라는 문구에 대해 자의적인 해석으로 지원 축소가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건보 재정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흑자를 보인 건보 재정 수지는 올해 적자로 전환할 것으로 관측된다. 2029년에는 준비금까지 모두 소진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초고령화 속에 지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보건복지부가 건보료 상∙하한선 인상을 추진하려다 개편안 발표를 연기한 것과 관련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초 복지부는 지난달 3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내놓으려 했다. 개편안 초안에는 이자·배당·임대·사업 등 월급 외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의 건보료를 올리고, 저소득 직장가입자의 월 최저 보험료도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스1

하지만 복지부는 건정심이 열리기 전날 “폭넓은 의견 수렴 등을 위해 논의를 연기했다”며 회의를 미뤘다. 최근 부동산 증세 추진과 주가 하락 등으로 여론이 악화된 분위기에서 건보 개편안은 국민 부담을 키운다는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2일 열린 ‘지역·필수·공공의료 간담회’에서 건보 재정에 대한 정부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정부가 건보 국고지원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한 참석자 지적에 관해 이 대통령은 “의무를 안 지켰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 문제는 수정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보험료가 공정하게 부과되고 있는지, 지출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과잉진료가 발생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사회에서도 국가 책임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민영화저지와무상의료실현을위한운동본부는 지난달 성명서를 내고 “직장가입자는 보험료를 사용자와 절반씩 부담하지만 지역가입자는 전액을 부담하는 만큼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라며 “그러나 역대 정부 모두 실제 지원은 13~14% 수준에 그쳤고 법정 기준이 지켜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된다며 국민에게 보험료 인상 부담을 요구하기에 앞서 국가가 부담해야 할 법적 의무부터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