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엔 1000평 유니클로, 공장엔 절반이 60대”…K패션 ‘성장사다리’ 흔들린다 [일상톡톡 플러스]

의류제조 사업체 81.3% 5인 미만…연 매출 3억원 미만 82.1%
종사자 46.6% 60대 이상·20~30대 4.8%…숙련기술 단절 우려
유니클로 매출 1조3524억원 회복…생산·투자·판로 연결이 과제

지난 5월 22일 유니클로가 서울 명동에 다시 대형 매장을 열었다. 2021년 명동중앙점 철수 이후 5년 만의 복귀다. 새 명동점은 지상 3개 층, 연면적 3254.8㎡(약 985평)로 국내 유니클로 매장 가운데 가장 크다.

 

대형 SPA 매장에 소비자들이 몰리는 사이 국내 봉제공장에서는 고령의 숙련공들이 생산 현장을 지키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패션 유통과 고령화한 국내 제조 기반의 대비를 표현한 이미지. ChatGPT 생성 이미지

유니클로의 부활은 실적으로도 확인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운영사 에프알엘코리아의 2025 회계연도 매출은 1조3524억원으로 전년보다 27.5% 늘었다. 2019년 기록한 역대 최대 매출 1조3781억원에 바짝 다가섰다.

 

화려하게 돌아온 글로벌 SPA 브랜드와 달리 국내 의류 생산 현장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5인 미만 사업장이 80%를 넘고 종사자의 절반 가까이는 60대 이상이다. 샘플 제작과 소량 생산을 맡아 신진 브랜드의 성장을 뒷받침해온 기반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온라인 유통 확대와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동대문 상권 침체, 소비 양극화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소비와 유통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는 사이 국내 제조 생태계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불매 충격 딛고 1조3000억원대 회복

 

유니클로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2005년이다. 일본 패스트리테일링과 롯데쇼핑이 합작해 에프알엘코리아를 세우고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매장을 넓혔다.

 

진출 첫해 매출은 205억원에 그쳤지만 히트텍과 에어리즘, 플리스 등 기능성 기본 의류가 잇달아 흥행했다. 2009년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고 2015년에는 국내 단일 패션 브랜드 최초로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고비도 있었다. 2019년 한·일 갈등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자 2020 회계연도 매출은 6298억원으로 직전 회계연도의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영업손실도 884억원에 달했다. 명동중앙점과 강남점 등 주요 점포가 잇달아 문을 닫았다.

 

이후 핵심 상품을 중심으로 재고와 매장 운영을 효율화하고 온라인 판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실적이 반등했다. 2025 회계연도 영업이익은 2704억원으로 전년보다 81.6% 증가했다.

 

같은 기간 1세대 캐주얼 시장의 다른 주자들은 힘이 빠졌다. 홍콩계 지오다노의 국내 매출은 2022년 1904억원에서 2025년 1320억원으로 3년 연속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2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2006년 이후 19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마뗑킴과 무신사 스탠다드 등 일부 K패션 브랜드는 해외에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문제는 몇몇 브랜드의 성공과 별개로 이를 지속적으로 배출할 국내 생산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5곳 중 4곳이 5인 미만…연 매출 3억원 미만 82%

 

한국패션협회가 올해 공개한 ‘2025년 국내 의류제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의류제조 사업체는 2만3507곳으로 추정됐다. 이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이 81.3%를 차지했다.

 

조사에서 확인된 산업 구조는 선명했다. 전체 사업체의 89.8%인 2만1110곳이 의류봉제 임가공업체였다. 연 매출 3억원 미만 업체도 82.1%에 달했다.

 

2023년보다 매출이 줄었다고 답한 업체는 62.9%였다. 향후 2년간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철수 또는 업종 전환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23.0%로 집계됐다. 사업 확대를 계획한 업체는 1.9%뿐이었다.

 

인력 고령화는 더 가파르다. 의류제조업 종사자 8만9337명 가운데 60대 이상이 46.6%를 차지했다. 20·30대는 4.8%에 그쳤다. 숙련 봉제사의 평균 월급여는 263만원이었다. 전체 종사자의 4대 보험 가입률도 52.6%에 머물렀다.

 

◆공장보다 먼저 사라지는 ‘성장 방식’

 

국내 신진 패션 브랜드는 대량 생산보다 소량 다품종 생산을 통해 성장해왔다. 동대문과 창신동 일대에서 샘플을 만든 뒤 적은 물량을 시장에 내놓고 반응이 좋으면 곧바로 추가 생산하는 방식이다. 판매가 기대에 못 미치면 재고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패턴과 샘플, 재단, 봉제, 후가공을 맡을 업체들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어야 한다. 주문을 받은 뒤 빠르게 제품을 수정하고 다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조사 결과 샘플실과 패턴실 등 제품 개발과 소량 생산 기능을 갖춘 사업체는 706곳으로 전체의 3.0%에 그쳤다.

 

의류제조업체의 내수 의존도는 97.9%에 달했다. 가장 큰 거래처 한 곳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평균 71.1%였다.

 

주요 거래처가 주문을 줄이거나 해외로 생산을 옮기면 영세 제조업체가 곧바로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공장이 줄어드는 것보다 더 큰 타격은 숙련된 기술과 촘촘한 협업망이 함께 사라지는 데서 나온다. 기계 한 대를 새로 들이는 것과 달리 패턴·재단·봉제 기술은 단기간에 복원하기 어렵다.

 

◆생산·투자 연결 나섰지만…민간 지원만으로는 한계

 

국내에서 기본 SPA 패션 시장의 대항마로 성장한 사례는 무신사 스탠다드다. 2017년 출시 이후 합리적인 가격과 기본 의류를 앞세워 2025년 연간 브랜드 매출 4500억원을 넘어섰다.

 

무신사는 판매 플랫폼을 넘어 생산 기반에도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동대문종합시장에 문을 연 무신사 스튜디오는 4628㎡ 규모로 사무실과 재봉실, 워크룸, 패턴 작업 공간 등을 갖췄다. 입주 업체는 같은 건물의 원단·부자재 상가와 연계해 샘플을 제작하고 제품을 수정할 수 있다.

 

중소·신진 브랜드에는 다음 시즌 생산자금을 무이자로 지원한다. 2015년부터 2025년 9월 말까지 누적 지원액은 4095억원에 달했다. 해외 진출 브랜드에는 현지 기업 간 거래(B2B) 세일즈와 팝업스토어 운영 등을 지원하고 있다.

 

민간 플랫폼 한 곳의 투자만으로 전국의 영세 제조 기반을 떠받치기는 어렵다.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국내 생산 물량이 늘어나는 구조를 만들고, 제조업체도 적정 이윤을 남겨 설비와 인력에 재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K뷰티처럼 잇되 패션에 맞게 바꿔야

 

패션업계에서 K뷰티의 성장 구조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K뷰티는 브랜드가 제품을 기획하면 국내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가 생산을 맡고 유통 플랫폼이 국내외 판매를 연결하는 분업 체계를 구축했다.

 

패션은 제품 종류와 사이즈가 많고 계절에 따른 수요 변화와 재고 위험도 커 K뷰티 모델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브랜드와 원단·부자재, 패턴·샘플, 봉제, 유통을 잇는 기획형 생산 체계가 필요하다는 방향은 같다.

 

산업통상부와 한국패션협회는 디자인과 소재, 제조, 마케팅 전 과정을 국내 기업이 맡는 ‘올 인 코리아’ 컨소시엄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국회에는 공동작업장과 공동재단실, 판로 확대, 금융·세제 지원, 전문인력 양성 등을 담은 ‘패션봉제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올라가 있다. 법안은 지난 5월 소관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뒤 소위원회로 넘겨졌다.

 

유니클로 한 브랜드가 잘나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정작 경고등이 켜진 곳은 그 뒤를 이을 국내 브랜드가 꾸준히 등장할 수 있는지, 이들의 아이디어를 실제 옷으로 구현할 제조 기반이 버틸 수 있는지다.

 

패션 생태계는 히트 브랜드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생 브랜드가 샘플을 만들고 시장 반응을 확인한 뒤 생산량을 늘리며 성장해야 다음 주자도 나올 수 있다. 그 출발점이 국내 봉제·제조 기반이다.

 

동대문의 재봉틀이 멈추면 공장 몇 곳이 사라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은 브랜드가 시장에 진입해 몸집을 키울 통로까지 좁아진다. K패션의 ‘성장사다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