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국민과자의 흑백 변신은 실패였나 [재패나우]

중동사태가 바꾼 감자칩 포장
컬러 빠지자 판매량도 ‘뚝’
전면 흑백 포장서 후퇴한 가루비

지난 5월 일본 유명 식품 제조업체 가루비(Calbee)가 ‘포테이토칩’ 등의 포장을 흑백으로 바꾸기로 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중동 사태로 인쇄용 잉크 원료 등의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내놓은 고육지책이었는데요. 당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플라스틱·섬유·고무뿐 아니라 포장재 잉크 등에도 필요한 “나프타 물량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터여서 일각에서는 가루비의 이런 방침을 ‘반일’, ‘반정부’적 행태로 몰아가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 한 편의점의 과자 진열대. 지난 5월18일(왼쪽) 화려한 컬러 포장 일색이었던 과자 일부가 이달 4일(오른쪽)에는 흑백 포장 상태로 진열돼 있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이후 흑백 포장 가루비 제품이 실제로 시판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는 도쿄 신주쿠구의 한 편의점에는 연한 소금 맛, 콘소메 펀치, 김소금 맛 포테이토칩이 흑백 포장 상태로 팔리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 과자’로 불릴 만큼 폭넓은 소비층을 확보하고 있어서 흑백 포장이 ‘판매량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과 ‘식욕을 돋구는 화려한 색상이 사라지면 눈길을 끌기 어렵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실제로는 어땠을까요.

 

흑백 포장 이후 감소한 판매량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난 2일 흑백 포장 포테이토칩 판매량이 감소 추세라고 보도했습니다.

 

닛케이가 독자적으로 전국 슈퍼마켓, 편의점, 약국형 점포 등에서 수집하는 ‘판매시점정보관리’(POS) 자료를 살펴봤더니, 연한 소금 맛의 1000명당 판매액이 6월 4주차에는 전주 대비 45%나 증가했지만 이후에는 4주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포테이토칩 콘소메 펀치와 김소금 맛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흑백 포장이 화제를 모으면서 ‘반짝 증가세’를 보이다 바로 꺾여버린 것입니다.

 

더위가 본격화하면서 과자류 매출이 줄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소매 관계자들로부터는 “흑백 포장으로 바뀐 뒤 매출이 부진하다”는 말이 나온다네요.

 

“색상은 식품 포장의 핵심”

 

흑백 포장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 미야모토 후미유키 오비린대 교수(비즈니스매니지먼트학군)는 닛케이에 “감자칩의 노란색을 보고 식욕이 돋는 식으로 포장재의 색깔은 소비자들의 잠재 의식과 깊게 연결돼 있다”며 “흑백으로 바뀌면 상품 자체의 얼굴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의 말이 맞았던 걸까요.

 

식품회사 메이지, 나가타니엔 등의 포장 디자인을 담당했던 후쿠이 마사히로 무사시노미술대 교수 의견도 비슷했습니다. 그는 “식품 포장에서는 색깔, 로고, 시즐(식욕을 돋우는 사진 또는 그림) 세 가지가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이 3요소 가운데 색깔, 시즐 두 가지가 빠졌으니 소비자의 호응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설명입니다.

 

가루비는 전면 흑백 포장으로 전환했던 제품 일부를 앞면 컬러 인쇄로 바꾸기로 했다. 가루비 제공

가루비 “앞면은 컬러로 전환”

 

판매량이 떨어져서인지 가루비는 지난달 9일 포장 컬러 인쇄를 재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리얼류인 ‘후루그라’ 등 8개 품목은 7월말 생산분부터 전면 컬러로 전환하고, 포테이토칩과 새우 과자 ‘갓파에비센’ 등 6개 제품은 앞면을 컬러로 바꾼다는 내용입니다. 절약 기조는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가루비 측은 “잉크 등 원재료 조달의 전망이 섰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대신 포장 변경이 판매량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현시점에서는 전할 내용이 없다”며 언급을 피했습니다.

 

앞으로도 포장 재료 조달 상황을 면밀히 살피면서 제품의 안정적 공급을 목표로 하겠다는 것이 가루비의 입장입니다.

 

나프타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

 

일본 석유화학공업협회(JPCA)에 따르면 일본은 나프타 수입품의 70% 이상, 국내 수요의 약 40%를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동 상황이 안정되지 않으면 나프타 공급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일본 나프타 거래 지표가 되는 도쿄 오픈스펙의 시황 추이를 보면, 나프타 가격은 호르무즈해협 봉쇄 우려가 최고조에 달했던 3월 하순 1톤당 1208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항행 정상화 기대감이 무르익었던 6월25일에는 627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7월21일 기준 가격은 839달러로 다시 오른 상태입니다. 지난해 12월 평균 가격 554.4달러에서 크게 오른 상태로 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가루비처럼 포장 일부를 흑백으로 바꾸거나, 카고메 토마토케첩처럼 포장 일러스트를 줄이고 투명한 부분을 늘리거나, 손님에게 개인 용기나 비닐봉지 지참을 독려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비용 상승분을 그대로 포장재나 용기 가격에 반영하는 정공법을 택한 기업도 있습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후쿠오카무역관은 이런 분석을 토대로 일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는 식품·포장재 기업을 향해 “계약 단계에서 원가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해두는 것이 좋다”며 “인쇄 사양과 소재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대안도 평소에 준비해둬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현지 포장업체 관계자는 “위기 상황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경량화·저잉크·저소재’ 패키지 옵 미리 준비해두면 일본 바이어와의 협상에서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 재패나우

 

- 일본은 2025년 한국인 945만여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가깝고 친숙한 나라입니다. 재패나우(Japan+Now)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도쿄에 사는 이방인의 눈으로 본 일본을 가급적 편견 없이, 소재 가리지 않고 전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일본어로 ‘아우’(会う)는 ‘만나다’라는 뜻입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재패나우(Japan+아우·会う)를 통해 일본을 더 생생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