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도 ‘푹’ 빠진 피클볼…파크골프 넘보는 ‘생활체육 골드러시’ [권준영의 머니볼]

美 참가자 2430만명으로 5년 새 5.8배↑…국내도 동호인 1만명 넘어서
서울 한강공원에 전용코트 14면…전국 100여개 클럽으로 저변 확대
장비부터 레슨·시설까지 소비 확장…한국서도 ‘차세대 생활체육’ 시험대

1965년 미국 워싱턴주 베인브리지섬의 한 뒷마당.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놀아줄 방법을 고민하던 정치인 조엘 프리처드와 친구들은 배드민턴 코트에 낮은 네트를 설치하고, 탁구채를 닮은 나무 패들과 구멍이 뚫린 플라스틱 공으로 새로운 놀이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가족끼리 즐기는 단순한 여가 활동이었다. 하지만 60년이 지난 지금 이 작은 놀이는 미국 생활체육 시장을 흔드는 거대한 스포츠가 됐다. 이름은 피클볼(Pickleball). 공 하나에서 시작한 놀이는 2025년 미국 참가자 2430만명을 거느린 대중 스포츠로 성장했고, 장비·시설·서비스 시장까지 아우르는 스포츠 비즈니스로 진화했다.

 

위 사진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 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최근 국내에서도 피클볼 바람이 불고 있다. 방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명인들이 피클볼을 즐기는 모습이 잇따라 알려지면서다. 방송인 전현무와 추성훈 등이 피클볼을 소개한 데 이어 가수 소유도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직접 레슨을 받고 “재밌고 힘이 많이 들지 않는다”며 매력을 전했다. 배우기 쉽고 큰 부담 없이 운동 효과와 경기의 재미를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이 피클볼의 매력으로 꼽힌다. 해외에서도 유명인들이 피클볼을 즐기는 모습이 잇따라 화제가 되면서, 한때 미국에서 중장년층 중심 종목으로 여겨졌던 피클볼은 젊은층까지 아우르는 생활체육으로 저변을 넓히고 있다.

 

피클볼은 테니스와 배드민턴, 탁구의 요소를 결합한 라켓 스포츠다. 코트는 가로 6.10m, 세로 13.41m로 테니스 코트보다 훨씬 작고, 네트 높이도 중앙 기준 86.4㎝다. 일반적으로 11점을 먼저 얻되 2점 차 이상 앞서야 승리한다. 강한 체력이나 전문 기술보다 위치 선정과 전략의 비중이 커 어린아이부터 고령층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 좁은 코트와 비교적 느린 공은 초보자의 부담을 낮추면서도 운동 효과를 낸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앤드 스포츠(Science & Sports)’에 게재된 연구에서는 성인이 피클볼 복식 경기를 할 경우 평지를 걷는 것보다 칼로리 소모량이 약 36%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도 피클볼 확산을 이끄는 요인이다. 골프처럼 수백만원대 장비나 라운드 비용이 필요하지 않고, 테니스처럼 고가 라켓과 장시간 훈련에 대한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다. 입문용 패들은 대체로 수십달러부터 구할 수 있고, 공과 운동화를 포함한 기본 장비는 약 15만~30만원이면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활동량이 늘면 카본 소재 등 고급 패들과 전용 운동화·가방·의류는 물론 레슨비와 대회 참가비 등으로 소비 영역이 넓어진다. 낮은 진입 비용이 꾸준한 소비로 이어지는 구조다.

 

실제 성장세도 가파르다. 미국 스포츠·피트니스산업협회(SFIA)에 따르면 미국 피클볼 참가자는 2020년 420만명에서 2025년 2430만명으로 5년 만에 약 5.8배 늘었다. 증가율로는 약 479%에 이른다. 연 8회 이상 즐기는 핵심 참가자인 ‘코어 참가자’도 같은 기간 140만명에서 750만명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단순히 한두 번 경험하는 유행을 넘어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참가층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50대 이상이 많이 즐기는 종목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젊은층 유입이 두드러진다. 13~24세 연령층의 참여가 늘었고, 여성 참가 비중도 2020년 38.6%에서 2025년 42.9%로 높아졌다.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가 함께 즐기는 커뮤니티형 스포츠로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

 

참가자가 늘면서 시설도 빠르게 확충되고 있다. 미국 내 피클볼 코트는 8만2613면, 경기 장소는 1만8258곳까지 늘었다. 공원과 학교, 리조트, 민간 스포츠시설 등으로 코트가 확산하며 새로운 공간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테니스 코트보다 작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 기존 시설을 피클볼 코트로 전환하기 쉽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다.

 

위 사진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 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장비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피클볼 장비 시장은 2024년 약 16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미국 참가자 2430만명이 평균 100달러짜리 패들 하나씩만 구매한다고 가정해도 잠재 소비액은 24억3000만달러에 이른다. 여기에 공과 신발, 의류는 물론 레슨비와 시설 이용료까지 더해지면서 관련 소비가 확대되고 있다.

 

시장이 커지자 자본도 움직였다. 미국 프로 피클볼 산업에는 2억2500만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고, 관련 기업들은 수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와 케빈 듀랜트 등 스포츠 스타들도 피클볼 구단 투자에 참여했다. 생활체육으로 출발한 피클볼이 장비와 시설을 넘어 프로리그·미디어·대회까지 아우르는 ‘스포츠 비즈니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피클볼 시장은 성장 초입에 들어섰다. 아직 미국처럼 공식적인 시장 규모를 집계한 통계는 부족하지만, 대한피클볼협회는 전국 클럽 수를 100여개, 동호인 수를 1만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시설 확충과 조직화도 빨라지고 있다. 서울시는 광나루한강공원에 피클볼 전용 코트 14면을 조성하며, 기존 테니스장 일부에 임시 라인을 설치해 즐기던 단계에서 벗어나 공공 전용시설을 마련했다.

 

다만 시장이 커질수록 안전은 풀어야 할 과제다. 국내 피클볼 참가자 38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근 1년간 부상 경험률은 38.1%로 나타났다. 테니스 엘보와 회전근개 손상 등 반복 동작에 따른 근골격계 부상이 주를 이뤘다. 피클볼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으려면 동호인 저변 확대뿐 아니라 지도자 양성, 안전교육, 경기 운영 체계 등 성장에 걸맞은 기반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