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 타고 있었다. 촛농이 흘러내리다 땀에 젖은 손등 근처에서 굳었다. 불빛이 미치는 자리는 한뼘 남짓, 떠난 사람의 수만큼 어둠은 깊었다. 5층 건물 내 30개로 쪼개진 방 가운데 26호실이 텅 비었다.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복도, 날개가 멈춘 선풍기, 건물 입구에 깔린 돗자리와 부채. 전기 끊긴 쪽방촌 건물, 남은 네 가구는 촛불을 든 채 열대야를 건너고 있었다.
전기는 더위가 시작된 2달여 전부터 수시로 끊겼다. 건물에 쌓인 미납 전기요금은 146만여원. 실거주하지 않으면서 조명과 에어컨 등을 켜둔 채 자리를 비우는 한 거주민이 100만원가량을 미납했다. 보상받고 떠난 이들이 남긴 요금이 더해졌다. 남은 4가구가 나눠 갚기 버거운 액수였다.
채금순(60)씨의 방에는 매일 저녁 8시부터 어둠이 찾아왔다. 짧으면 3∼4시간, 길면 6시간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가장 길었던 날은 아침 6시에 나간 전기가 오후 4시에나 돌아왔다. 그는 “선풍기도 안 되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며 “단전된 밤에는 부채를 부치고, 찬물로 세수를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견디기 힘든 날에는 임재국(58)씨와 건물 입구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입추(立秋)라는 절기가 무색하게 폭염이 절정에 달한 지난 7일, 채씨는 한숨을 내쉬는 사이사이 힘들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정종철(50)씨는 당뇨와 고지혈증을 앓는다. 폭염 속 방안에서 몸이 마비된 적이 있다. 평소 밥을 챙겨주던 채씨가 확인차 문을 열었고, 쓰러진 그를 발견해 신고했다. 그는 “이 날씨에 여기 살다 보면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며 “매일 시원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지 집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의 극한 여름은 예고돼 있었다. 건물은 2020년 7월 지정된 ‘영등포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구역 안에 있다. 한국주택토지공사(LH)·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영등포구가 함께 시행하는 공공 주도 첫 쪽방촌 정비사업이다. 쪽방 주민용 임대주택 370호를 포함해 782가구가 들어선다.
이번 정비사업은 ‘선(先)이주 선(善)순환’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기 전에 먼저 주민들이 입주할 임대주택을 마련하고, 이주를 마친 뒤 본격적인 개발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임시거주시설은 총 96호실만 지어졌다. 올해 1월 입주 희망 주민 195명의 절반만 수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계획은 수정 없이 그대로 이행됐다. 선택받지 못한 이들은 떠난 이들의 미납금과 함께 어둠 속에 버려졌다.
굳이 서울을 고집한다는 바깥의 눈초리도 온당하지는 않다. 배모(60)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이 건물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 동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어머니는 같은 건물 지하에 살다가 임시거주시설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라서 입주했지만, 배씨는 차상위계층이라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는 “내 고향인데, 지방으로 가라는 건 말도 안 된다”며 “토박이로 살았으니 여기서 죽어야지”라고 말했다.
SH는 취재가 시작된 뒤인 7일에야 ‘공과금(전기·수도) 지원 사업’을 공지했다. 지원 기간은 2026년 8월부터로 알려졌다. 서울에 올여름 첫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지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SH 관계자는 “잔류 거주민의 생활 불편을 덜기 위해 시행하는 사항”이라며 “사업시행자가 한국전력공사와 남부수도사업소에 요금을 직접 납부한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이 7일 발표한 집계에서 올해 온열질환자는 2872명, 사망자는 23명이었다. 같은 날 구윤철 부총리는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공용 에어컨 가동 상태를 점검했다. 그날 밤 경인로 96길, 빈방 26호실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다. 사람 있는 방에는 각자 초 한 자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