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홀로 사는 어르신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와 수면 상태를 묻고, 위급할 때는 “살려줘”라는 한마디를 알아듣고 119를 부른다. 이제는 실버타운에 설치된 센서가 입주자의 심박수와 움직임을 24시간 살피는 단계까지 들어섰다.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돌봄 수요가 빠르게 늘자 건설사와 통신사, 플랫폼 기업들이 잇달아 ‘AI 돌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초기에는 안부전화와 AI 스피커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주거공간에서 수집한 생활·건강 데이터를 한데 묶어 돌봄 인력의 판단을 돕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돌봄형 실버타운 운영사 뉴시니어라이프와 ‘AI 시니어 리빙 솔루션 도입 및 사업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은 지난달 30일 경기 포천시 ‘케어링 스테이 의정부수목원점’에서 열렸다. 양사는 이곳에 솔루션을 우선 적용한 뒤 운영 과정에서 쌓이는 데이터를 활용해 기능을 고도화하고 신규 지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삼성물산의 AI 시니어 리빙 솔루션은 입주자별 생활·건강 정보와 시설 운영 데이터를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에 따로 관리하던 정보를 모아 신체와 수면, 인지, 정서 상태의 변화를 살피고 이를 맞춤형 돌봄에 활용한다.
객실에 설치되는 앰비언트 센서는 수면 중 심박수와 입실 후 움직임 등을 24시간 감지한다.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나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돌봄 인력이 확인할 수 있도록 알림을 보낸다. 시설 운영자는 통합 대시보드와 AI 챗봇을 이용해 입주자 상태를 파악하고 반복적인 기록·조회 업무를 줄일 수 있다.
케어링 스테이는 요양원의 전문 돌봄과 실버타운의 주거 편의를 결합한 시설이다. 현재 수원화성레이크점과 의정부수목원점에서 총 132세대를 운영하고 있다. 오는 9월 태릉 별내점과 화성 비봉점, 송도 해오름호수점을 추가로 열어 5개 지점 330세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삼성물산은 앞서 지난 5월 프리미엄 시니어 레지던스 ‘더시그넘하우스 강남’에도 같은 솔루션을 도입하기로 했다. 자립형 거주 세대에는 활동량과 생활 리듬을 활용한 건강관리 기능을, 돌봄형 너싱홈에는 이상 징후 알림과 모니터링 기능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지난 3월에는 경기 의왕 메디컬 복합단지 개발사와도 적용 협약을 맺었다.
AI 돌봄이 현장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먼저 확산한 형태는 전화와 AI 스피커다.
네이버의 ‘클로바 케어콜’은 AI가 돌봄 대상자에게 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건강과 식사, 수면, 정서 상태를 확인한다. 이전 통화 내용을 기억해 “지난번 아프다고 했던 무릎은 괜찮은지”와 같은 연속성 있는 대화도 할 수 있다.
2022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뒤 전국 지자체로 확산됐다. 네이버가 2026년 3월 공개한 분석에서는 케어콜 도입에 따른 행정 효율 향상과 고독사·자살 위험 완화 등 사회적 가치가 전체 이용량 기준 약 340억원으로 추산됐다.
SK텔레콤은 AI 스피커 ‘누구’를 활용했다. 이용자가 “아리아, 살려줘” 또는 “긴급 SOS”라고 말하면 관제센터와 119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SK텔레콤이 2023년 5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전국 93개 지방자치단체·기관에서 약 1만7000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2019년 4월부터 2023년 5월 초까지 약 6000건의 긴급호출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500건 이상이 119 구조로 이어졌다.
구조 사례의 52%는 뇌출혈과 저혈압, 급성복통 등 응급증상 때문이었다. 기저질환 악화가 25%, 낙상·미끄러짐 등 생활 속 안전사고가 20%를 차지했다. 특히 구조 요청의 74%가 주변 도움을 받기 어려운 저녁부터 이른 아침 사이에 집중됐다.
KT도 광주 서구에서 ‘기가지니’를 활용한 AI 케어 서비스를 운영했다. 이용자 212명을 조사한 결과 건강 수준이 개선되거나 유지됐다는 응답은 80%, 고독감이 줄었다는 응답은 65.9%였다. 조사 기간 AI 스피커를 통해 응급환자 8명이 실제 구조로 이어졌다.
LG유플러스는 한국노인복지중앙회 산하 요양원 20곳에서 얼굴을 자동으로 가리는 지능형 폐쇄회로(CC)TV를 시범 운영했다. 사람의 자세 변화를 감지하는 ‘U+스마트레이더’를 결합해 낙상 가능성을 파악하는 모델도 선보였다. 영상 대신 레이더로 움직임을 감지해 사생활 노출을 줄이는 방식이다.
기업들이 AI 돌봄 시장에 몰리는 배경에는 급속한 고령화가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 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0.3%를 차지했다. 이 비율은 2036년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가구주인 1인 가구도 2022년 192만가구에서 2052년 496만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이 모든 입주자의 수면과 움직임을 밤낮없이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AI가 이상 징후를 먼저 골라내면 돌봄 인력은 도움이 필요한 입주자에게 집중할 수 있다. 안부전화와 복약 알림, 기록 작성처럼 반복되는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센서가 감지한 움직임이나 심박수 변화는 의료진의 진단과 같지 않다. 정상적인 움직임을 위험 상황으로 잘못 판단하거나 실제 위급 상황을 놓칠 가능성도 있다. 기업들이 밝힌 도입 효과 역시 서비스별 조사 시점과 대상, 측정 방식이 달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수면과 심박, 생활 동선처럼 민감한 데이터를 누가 수집하고 얼마나 보관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입주자와 보호자에게 수집 항목과 이용 목적을 충분히 설명하고, AI 알림을 사람이 다시 확인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AI가 돌봄 인력의 손길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다만 사람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위험을 먼저 알리고 반복 업무를 덜어주는 보조자로서는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센서를 얼마나 많이 설치하느냐보다, 수집된 신호를 실제 돌봄과 얼마나 정확하게 연결하느냐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