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백발이 무성한 남자가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2019년 10월7일 오전 7시41분, 6호실을 지키던 유가족은 아직 단잠에 빠져 있었다. 170㎝가 채 안 되고 비쩍 마른, 왜소한 체격의 남자는 부의함 서랍에서 상주 몰래 봉투 20장을 챙겼다. 부의금이 담기지 않은 빈 봉투라는 사실은 한참 뒤 깨달았다.
장례식장에서 허탕을 친 그는 다음날 새벽 인근 롯데리아 앞 도로에 내려진 플라스틱 상자에서 햄버거 제조용 빵 4개들이 두 봉지를 훔쳤다. 두 손이 익숙하게 움직였다. 8일 전에도 그는 이곳에서 몰래 빵을 갖고 간 적이 있었다.
그다음은 술이었다. 10월13일 오전 5시24분,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시간 한 식당 앞에 놓인 주류 상자에서 소주 3병을 슬쩍했다. 2시간 뒤엔 다른 주점 문 앞에 서 있었다. 골프채로 출입문과 창문 유리를 깨고 들어간 남자가 갖고 나온 것은 소주 1병과 종이컵이 전부였다. 그다음 날에도 그는 주변 음식점에 침입해 소주를 훔쳤다.
하루는 동네 편의점을 찾아가 아르바이트생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는 10월19일 오전 5시5분 골프채로 출입문을 두드리며 “야, 아저씨 돈 없으니까 참이슬 후레쉬 한 병 가져와”라고 말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지인 A씨가 운영하는 대우이발소의 유리창을 골프채로 부수기도 했다. 남자는 절도, 특수절도, 특수재물손괴, 특수협박, 특수공갈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강원 원주교도소에 수감됐다.
2021년 4월15일 아침 교도소 정문이 열렸다. 그는 또다시 대우이발소를 찾아가 유리창에 돌을 던졌다. 출소 이틀 만이었다.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다시 서울남부구치소에 갇혔다.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며 출소와 수감을 반복했다. 재판만 네 번을 더 받았다. 한 판결문에 따르면 2022년 1월18일부터 27일까지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그가 훔친 것은 손수레 1대와 주류 박스 8개, 맥주 공병 40개, 소주 공병 150개였다. 피해액은 36만8200원으로 추산됐다. 그나마 손수레 가격이 30만원으로 매겨졌다. 공병을 판 돈으로 다시 술을 마셨다. 함재원(가명)씨는 67세에 전과 6범이 됐다.
지난달 6일 함씨가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출소했다. 벌금 320만원을 미납해 환형유치 처분을 받은 지 32일 만이었다. 환형유치는 벌금형을 받은 이들이 벌금을 내지 못할 경우 교도소 등에 수감해 노역으로 벌금을 대신 갚게 하는 제도다.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쳐준 셈이지만, 정작 함씨는 단 한 번도 노역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출소 당일부터 같은 달 16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함씨를 인터뷰했다. 함씨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번번이 취재팀과 약속시간을 어겼다. 정확하게는 약속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함씨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면 ‘착신 정지’ 상태라는 안내 메시지가 흘러 나왔다. 서울 구로구 오류동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만취한 함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함씨는 취재팀과 우연히 재회한 것처럼 반가워했다. 휴대폰은 어디선가 잃어버렸다고 했다.
함씨 얼굴엔 대개 불콰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출소 첫날 그는 예전 고시원에서 벽을 맞대고 살았던 지인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노래방 기기의 반주소리가 들렸다. 열흘 뒤인 16일, 함씨는 오류동의 한 식당에서 취재팀을 만났다. 매번 그는 “소주 반병만 마시겠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이날을 포함해 약속이 지켜진 적은 없었다. 함씨는 소주를 마실 때면 늘 자판기용 종이컵을 썼다. 한 병을 다 비우는 동안 그는 달걀말이 딱 한 조각만 집어먹었다.
함씨는 교도소를 나설 때 입었던 청색 반팔옷과 긴 바지 차림 그대로였다. 열흘 전과 달라진 것은 이젠 양말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신발 뒤축을 꺾어 신었다는 점뿐이었다. 출소 직후 또렷했던 그의 발음은 어느새 흐릿해져 있었다. 10일이 지나도록 함씨는 거처를 정하지 못했다. 어떤 날은 대중목욕탕에서, 또 다른 날은 거리에서 눈을 붙였다. 고시원을 알아보고 있지만, 어느 곳도 마땅치 않았다. “M고시원이라는 데 알아보니까 48만원, 65만원 막 그래요. 도저히 얻을 수가 없고. C고시원이라는 데는 또 가봤더니 정말 전근대적인 시설이에요. 너무 노후화돼 갖고. 28만원이라길래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왔어요.”
한번은 D고시원의 월세 33만원짜리 방을 계약했지만, 당일 저녁 고시원 주인이 환불과 함께 퇴거를 요청했다. 함씨는 이를 두고 이유를 모르겠다며 “미스터리”라고 했다. 고시원 주인의 말은 달랐다. “입실 계약 절차를 마치고 나가더니 완전 술로 만신창이 돼 가지고 들어왔어요. 갈지자로, 거의 걷지 못할 정도로 들어오는데 어느 원장이 첫날부터 그런 사람을 받아주겠습니까? 바로 환불해서 쫓아버렸어요.”
이미 동네에서 함씨는 유명인사였다. 그는 2년 전쯤 오류동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웬만한 식당 주인들은 그를 알아봤다. 19년 전 장사를 시작했다는 한식당 주인은 “내가 (오전) 8시40분쯤 나왔거든. 벌써 편의점에서 술을 드셨는지 (식당 앞에) 누워 계시더라고”라며 “식사를 하시겠다고 그래서 부대찌개를 해서 줬더니 반 조금 드시고 갔어. 세상에, 9시도 안 돼서는 소주를 잡수고 앉아서 자고 또 앉아서 자고, 그래서 내가 가시라고 그랬다”고 말했다.
과거 다닌 적이 있었던 교회를 함씨가 최근 다시 방문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함씨 본인이 2019년 10월14일 전자 베이스 기타를 휘둘러 유리 출입문을 박살 낸 곳이었다. 교회 목사는 “엊그제(7월10일) 함씨가 몇 년 만에 왔다”며 “밥을 못 먹었다고, 목사님 한 끼만 도와 달라고 그러더라”고 밝혔다. 함씨는 목사에게서 1만원 지폐 한 장을 받아갔다.
그 사이 함씨는 GS25 편의점 점주와 앙숙이 됐다. 장맛비가 거세지며 일 강수량이 74.5㎜로 기록된 지난달 14일 오후 6시쯤 그는 GS25 옆 건물 앞에 우산 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으로 보이는 경찰관 2명이 함씨에게 “저쪽 GS는 웬만하면 가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이틀 뒤에는 GS25 점주와 언쟁을 벌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술에 취한 함씨가 편의점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점주가 가게 앞으로 나와 함씨를 지켜봤다. “아저씨, 뭐 잘못됐어요?” 함씨 언성이 높아졌다. 점주가 “누가 뭐라 그랬냐”고 쏘아붙이자, 함씨는 실제 나이보다 다섯 살을 부풀렸다. “나 72살인데, 왜 반말을 까냐고. XX놈아!” 점주는 “하루에 두 번씩 내가 경찰에 신고한다. 아주머니들 장사하는 데 가서 술 먹고 맨날 욕이나 한다”며 혀를 찼다.
한때는 커튼월 시공 현장에서 일했다고 함씨는 말했다. 커튼월은 건물의 외벽 전체를 유리창으로 감싸는 건축 공법이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역시 자신의 작품이라고 함씨는 강조했다. 드물게 함씨 얼굴에 자부심이 스쳤다. “작년까지 기다렸는데 내가 한번 우리 동생한테 물어봤었어요. ‘형님, 나이가 있어서 안 돼요.’ 1군이 있고, 2군이 있거든. 안 된대. 그럴 때 사실은, 일하고 싶어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란 곳이 있다. 출소자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숙식과 취업 등을 지원하는 법무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함씨도 공단의 존재를 안다. 그러나 한사코 연락은 거부한다. “남부(교도소)에서 보니까 개똥이 소똥이 해갖고 어디에서 이렇게 월 100만원 준다, 200만원 준다. 다 뻥이에요. 난 (연락을) 안 해봤어요. 뻥이란 걸 알고 안 했어요.” 함씨 앞으로 음식을 옮기던 식당 직원이 피식 웃었다.
함씨는 또다른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달 18일 서울남부지법에서 함씨의 절도 혐의에 대한 첫 번째 공판이 열린다. 함씨는 자신이 어떤 혐의로 재판을 받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배달하는 24시 음식점이 있는데 뒤에 보면 함지박 같은 그릇이 하나 있어요. 그거를 고물상에 줬는데 3000원을 받았어요.” 이때의 절도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는데, 자신이 정식 재판을 청구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짐작했다.
함씨는 “중대 사안이면 구속을 했을 것이다. (재판을) 딜레이를 하잖아. 중대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함씨의 말대로 해당 재판의 공판은 실제로 여러 차례 연기됐다. 4월17일에서 5월19일로, 7월7일, 8월18일로 반복해서 기일이 변경됐다. 다만 세 차례 연기 중 두 번은 다름 아닌 함씨의 불출석 때문이었다.
그는 18일 공판에 꼭 출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질 게 뭐냐 하면, 거주지가 없는 것도 아닌데 공소장을 못 받았어요. 국선이든 변호인이 선임돼야 하는데, 안 돼 있어요. 18일에 가면은 제가 재판부한테 손을 들 거예요. ‘내용이 뭡니까. 그다음에, 이래저래 해서 공지를 못 받았습니다. 딜레이하겠습니다’ 할 겁니다. 제가 어찌 됐든 간에.”
현재 함씨는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에 입원하길 기다리고 있다. “저는 고시원보다 사실은 병원생활이 좋아요.” 과거 입원했던 적이 있는 두 병원에 빈자리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문의해 놓은 상황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의료급여 1종 수급 대상자로 3개월간 입원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 과거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정신병원에 3개월간 입원해 있는 동안 그는 매달 7000원 정도만 썼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밥이 나왔고,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했다. 담배도 피울 수 있었다. 주치의도, 치료 프로그램도 마음에 들었다. 식사가 뷔페식으로 무제한 제공된다는 경기 부천시 소재 다른 정신병원을 두고는 “진짜 파라다이스”라고 불렀다. 이번 재판에서 벌금이 확정되면 빈털터리인 함씨는 먼저 노역장에 유치될 것이다. 파라다이스는 그다음이다.
탐사보도2팀=백준무·이예림·최우석 기자
사진: 유희태 기자, 편집: 김효순 기자, 미술: 손성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