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전후부터 태평양전쟁(1937∼1945년) 기간 일본의 여러 의과대학에서 전장에서 혈액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수혈법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입원 환자들에게 동물의 혈액이나 혈액형이 맞지 않는 혈액 등을 주입하는 인체실험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 과정에서 환자가 사망한 사례도 있었으며, 9세 어린이도 대상에 포함됐다.
8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교토부립의대, 규슈제국대(현 규슈대), 구마모토의대(현 구마모토대) 등은 중일전쟁 전후부터 태평양전쟁 기간에 걸쳐 다양한 수혈 실험을 진행했다.
교도통신은 전쟁과 의학 문제를 연구해온 요시나카 다케시 교토대 의학부 임상교수와 함께 당시 의학 전문지 등에 게재된 관련 논문을 분석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일반적인 수혈이 어려운 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수혈법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혈액을 환자에게 직접 주입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험에는 채혈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보존혈’과 혈액형이 맞지 않는 ‘부적합 혈액(이형혈)’, 사람의 혈액이 아닌 말·소·염소 등의 혈액인 ‘이종혈’ 등이 활용됐다.
구마모토의대에서는 뇌 수술을 받은 남성에게 말의 보존혈을 수혈한 뒤 환자가 사망한 사례가 확인됐다. 골수염으로 다른 병원에서 옮겨온 9세 남자아이에게는 21일간 보존한 혈장을 주입했으며, 아이는 수혈 직후 숨졌다.
일본 대학 연구자가 중국 난징의 병원을 방문해 진행한 실험에서도 말의 보존혈을 환자에게 주입한 뒤 1명이 사망한 사례도 확인됐다.
교토부립의대에서는 건조된 혈액을 환자 몸에 주입한 사례도 있었다.
당시에는 전쟁터에서 부상자가 발생할 경우 충분한 혈액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혈액을 장기간 보존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수혈법을 찾으려는 연구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혈액형이 맞지 않는 혈액이나 동물의 혈액을 실제 환자에게 주입했다는 점에서 의료윤리 측면의 문제가 제기된다.
요시나카 교수는 해당 실험에 치료법을 개발하려는 의학적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전쟁 수행에 협력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비윤리적인 인체실험에 대한 심리적·윤리적 장벽이 낮아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확인된 실험은 당시 의학계에 발표된 논문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났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새로운 수혈 기술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실제 환자에게 위험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수혈이 시행됐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 의학계와 전쟁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교도통신은 앞서 중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 군의학교 교관이 동물 혈액을 사람에게 주입하는 실험을 반복적으로 실시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보도하는 등 중국에서 일본군에 의한 이종 수혈 실험 의혹도 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