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취임 한 달여 만에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하면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7700억원 규모의 감액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예고하고, 7조원대에 달하는 상환 채무 잔액을 공개해 전임 도정의 예산 쪼개기 편성을 정조준했지만 불똥은 ‘이재명 책임론’으로 튀었다. 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도지사 시절 현금성 복지와 선심성 예산이 부른 사태”라며 공세의 고삐를 조인 상태다.
◆법정 지표 아직 ‘안정’…지역개발기금·통합계정, 道 내부 차입
10일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경기도의 채무비율은 11.95%로 서울(20.53%)이나 전국 평균(14.58%)보다 양호하다. 인천시(11.28%)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방재정법상 예산 대비 채무비율이 25%를 넘어야 ‘재정 주의’ 단계로 분류된다.
관리채무상환비율 역시 8.39%로 행정안전부 진단 기준(12% 초과)에 못 미친다. 이는 지자체 재정수입 중 채무잔액의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가리킨다. 이처럼 법정 지표를 뜯어보면 경기도가 당장 파산 직전의 ‘재정 위기 단계’에 들어선 건 아니다.
7조6066원의 채무(원금 6조7283억원, 이자 8783억원)도 한 해 재정수지 적자가 아닌 장기 차입금과 이자를 합친 것이다. 올해와 내년 5000억∼6000억원, 2028∼2031년까지 매년 1조3000억∼2조4000억원을 예정대로 갚으면 거의 탕감되도록 설계됐다.
이 중 지역개발기금(4조3589억원)과 통합계정(1조3055억원)은 도 내부 회계 간 차입이다. 외부 부채인 지방채와는 성격이 다르고, 법정한도와 광역지자체 평균을 고려했을 때 관리 가능한 범위라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달 22일 도의회 운영위원장이 도지사 비서실 등에 “도의 채무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기준점을 다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秋 “반도체 기업 성장해도 道에 세입 없어…빈껍데기 부자”
문제는 ‘숫자의 착시’ 뒤에 숨은 급격한 악화 추세와 재정 구조의 허약함이다. 경기도의 채무비율은 2020년 4.53%에서 매년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특히 필수 고정지출이 경상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경상수지비율’은 2024년 기준 86.09%로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벌어들이는 돈의 86%가 복지비와 인건비, 국비 매칭 등으로 이미 묶여 있어 정책 자율성이 사실상 마비된 셈이다. 핵심 세원인 부동산취득세 수입 역시 2022년 11조원대에서 올해 8조원대로 줄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빚을 빚으로 돌려막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도의 재정 난국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책임 공방으로 요동치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국민의힘은 “진짜 원인은 이재명 대통령의 도지사 재임 시절 시작된 현금성 복지 지출과 예산 남용”이라며 코로나19 사태 이전 확정된 청년기본소득·산후조리비 등 고정 지출을 지목했다.
김동연 전 지사 측 인사 역시 “경기 부양을 위한 정당한 재정 투입이었다”고 반박했다.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내수 진작 방안을 찾아야 한다”던 당시 이재명 대선후보의 발언을 인용하며, 역주행하던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에 맞섰다고 해명했다.
이런 가운데 “마른 땅에 풀 한 포기 남지 않았다”고 밝힌 추 지사는 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양한 정치적 억측에 휩싸였다. 그는 위기의 본질을 ‘낡은 지방세제’로 규정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 중이다. 세출 구조조정과 지방세제 개혁이 첫 시험대가 된 셈이다.
◆학계 “道 책임부터 인정…세제개편은 장기과제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선 “반도체 기업이 성장해도 경기도에는 세입이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추 지사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도로·전력·용수 등 막대한 인프라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정작 기업이 내는 법인지방소득세는 시·군으로 귀속되는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부동산 침체로 핵심 세원인 취득세 수입이 30%가량 급감하고, 국가직 소방공무원 인건비 1조1000억원을 지자체가 대납하는 왜곡된 재정 관계도 도마 위에 올렸다.
추 지사는 “기업이 성장해 늘어난 세수는 경기도에 돌아오지 않고, 그 세수로 늘어난 보통교부세 역시 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산업 기반을 닦고 일자리를 만드는 노력을 할수록 더 부담이 늘고 빚이 느는 이중 모순에 허우적거리는 경기도”라고 강조했다.
대안으로 법인지방소득세의 ‘공동세원화’와 보통교부세 교부 단체로의 전환 등 지방세제 개편을 제시했다. 용인·화성·평택·이천 등 시·군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행정고시 출신인 남재걸 단국대 교수(행정학)는 경기도가 당장 세제개편을 논의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매달 50만원 넘는 용돈을 꾸준히 올려받던 자녀가 휴대전화 통신비가 2배로 올랐다고 이를 부모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남 교수는 “도가 예측 가능한 재정 구조를 짜놓지 못하고 재정지출에 실패한 책임부터 인정해야 한다”며 “(넘치는) 취득세 세입을 누리다가 상황이 바뀌니 (정부의) 세제개편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세출 구조조정 등 자구책부터 마련하고, 세제개편은 향후 장기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