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하 나흘 앞두고 2000마리 폐사… 양계농가의 잔인한 여름 [밀착취재]

10일 0시 30분 경기 연천군의 한 육계농장. 더위가 한 풀 꺾인 이날 계사 앞에 대형 화물차가 들어서자 작업자들이 닭들을 케이지에 담기 시작했다. 출하를 기다리는 닭들의 울음 소리와 환풍기가 돌아가는 굉음이 농장 안을 가득 메웠다. 이날 출하된 아바에이커 품종의 닭은 모두 4만7000여마리다. 농장에 입추(入雛)한 4만9000마리 중 2000마리는 출하일을 나흘 앞둔 지난 5일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폐사했다. 닭을 실은 차량이 농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농장주 A씨는 충혈된 눈으로 “올해도 이렇게 힘든데 내년에는 어떻게 버텨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 연천군의 기온이 38.9도까지 올랐던 지난 4∼5일 폐사한 닭들이 트럭에 실려있는 모습. 연천 육계농가 제공

도시에서 사업을 하다가 귀농한 농장주 A씨(70)는 빚을 내 10억원 이상 투자해 올해로 9년째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대형 선풍기와 환풍기, 안개분무시설을 가동했지만 내부 온도가 38∼39도까지 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며 “생때 같이 키운 닭들이 기절하듯 죽어나가니 참담하다”고 말했다. 

반경 2㎞ 안에 있는 두 곳의 육계농가들도 냉방·환기시설을 밤낮없이 돌리고 가족들이 교대하며 닭의 상태를 살폈지만 기록적인 더위 앞에서 4000∼5000마리의 닭을 잃었다. 이하늘 기자

 

피해는 이 농장에 그치지 않았다. 반경 2㎞ 안에 있는 두 곳의 육계농가들도 같은날 4000∼5000마리의 닭을 잃었다. 농가마다 냉방·환기시설을 밤낮없이 돌리고 가족들이 교대하며 닭의 상태를 살폈지만 기록적인 더위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닭은 정상 체온이 41도 안팎으로 사람보다 높고 땀샘이 없어 고온에 취약하다. 입을 벌리고 빠르게 호흡하는 방식으로 체온을 낮추지만 외부 기온과 습도가 함께 오르면 체열을 배출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 특히 수만마리를 한 공간에서 기르는 육계 농장은 출하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닭의 몸집이 커지고 사육밀도가 높아져 집단폐사 위험이 더욱 커진다.

 

A씨는 “사람도 이렇게 더운데 말 못하는 닭은 얼마나 불쌍하냐”며 “이상기온으로 날씨는 더 더워질텐데 어떤 대책을 세워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축재해보험에 가입했지만 보상금만으로 손실을 모두 메우기는 어렵다. 사료비, 약품비, 전기요금 등을 메우고 나면 남는 돈은 없다. 결국 폐사 없이 닭을 길러 제때 출하해야 농가가 수익을 남길 수 있다.

 

10일 0시 경기 연천군의 한 육계농가에서 아바에이커 품종의 닭 4만7000마리가 출하를 기다리고 있다. 이하늘 기자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한 가축 폐산은 전국에서 잇따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폭염으로 폐사 신고된 가축은 약 83만603마리다. 축종별로는 돼지 4만2319마리, 닭과 오리 등 가금류가 약 78만8284마리로 전체의 95%가량을 차지했다.

 

10일 0시 경기 연천군의 한 육계농가에서 대형 화물차에 4만7000마리의 닭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이하늘 기자

송영한 강원대 교수(동물자원과학과)는 “기후변화로 과거보다 강한 폭염이 반복되는 만큼 환기팬이나 분무시설을 추가하는 농가 단위의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한계가 있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설 현대화 지원과 함께 폭염 피해를 제대로 보전할 수 있도록 재해보험 체계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출하 작업은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살아남은 닭들이 모두 농장을 떠난 뒤 계사는 텅 비었지만 A씨의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여름은 넘겼지만 벌써부터 내년 여름이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