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와 북청에서 10여 년의 유배 생활을 보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고립된 삶 속에서도 사람들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 중국의 문인부터 평생의 벗과 제자, 승려에 이르기까지 편지와 시, 그림을 주고받으며 학문과 예술을 이어갔다. 오늘날 ‘추사체’로 대표되는 독창적인 예술세계 역시 이 같은 교유 속에서 무르익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1일부터 11월22일까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 주제전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를 연다. 서화실 재개관을 기념해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에 이어 마련한 세 번째 한국 대표 서화가 전시다. 보물 ‘불이선란도’를 비롯해 편지와 서예, 그림, 탑본 등 31건 38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한 명의 천재 예술가보다 그를 둘러싼 ‘사람’에 주목한다. 김정희의 삶과 금석학, 문예, 불교를 따라가며 주변 인물들과 나눈 학문적·예술적 교류가 어떻게 새로운 성취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전시의 백미는 60대 후반에 이른 추사의 원숙한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대표작 ‘불이선란도’는 난초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서예와 같은 붓놀림으로 표현해 글씨와 그림의 경계를 허문 작품이다. 1856년 71세에 쓴 ‘산호가·비취병 대련’에서는 굵고 가는 획을 자유롭게 오가는 말년 추사체의 과감함을, 같은 해 쓴 ‘해붕대사화상찬’에서는 군더더기를 덜어낸 해서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불이선란도’는 9월13일까지 전시한 뒤 ‘함추각 행서대련’으로 교체된다.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6건 6점에 달한다. 1819년 34세의 김정희가 부친 김노경의 예조판서 임명과 자신의 문과 급제 소식을 전한 ‘황해도 무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아직 젊은 추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북청 유배 중 발견한 돌화살촉을 고증하며 지은 시를 쓴 ‘석노시첩’과 제주 유배 시절 청나라 문인의 그림을 보고 지은 ‘기유십육도시첩’도 처음 관람객을 만난다.
김정희와 청나라 지식인들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소동파입극도’ 역시 처음 공개된다. 중국 문인 주학년이 그림을 그리고 김정희가 스승으로 섬긴 옹방강과 완원 등이 감상 글을 남긴 작품이다. 김정희가 조선에 머물면서도 청의 학문·예술계와 긴밀하게 교류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학문적 면모도 비중 있게 다룬다. 김정희는 청나라에서 접한 고증학과 금석학을 토대로 비석과 옛 글씨를 연구하며 새로운 서예 세계를 열었다. 전시장에서는 그가 경주 풀숲에서 직접 찾아낸 통일신라 ‘무장사 아미타불 조성기비 편’을 비롯해 벗들과 함께 금석문을 조사하고 고증한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예술적 계보도 이어진다. 제자 허련이 원나라 화가 예찬의 화풍을 따라 그린 산수도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묵란도권’은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기증품으로 기증 이후 처음 공개된다. 평생지기 김유근과 권돈인을 위해 만든 작품, 승려 초의에게 보낸 편지와 해붕·백파를 기리는 글 등을 통해 신분과 지역을 넘어 이어진 교유도 조명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어떻게 뛰어난 예술적 성취로 이어졌는지 살펴보는 전시”라며 “김정희가 학문의 경계를 넘으며 옛것을 바탕으로 이뤄낸 탁월한 서화의 경지를 깊이 감상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