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형사판결문 비효율적… 상소 때 보충해야”

사법정책硏, 적정화 연구 보고서
법관 72% “판결문 작성 부담 커”

형사판결문 분량이 갈수록 길어지며 법관들의 판결문 작성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상소(항소·상고)가 제기된 사건에 한해 법관이 판결 이유를 사후 보충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사건의 성격과 당사자의 재판 불복 여부에 따라 판결문 작성에 투입되는 법관의 시간과 역량 등 사법자원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사판결문 분량이 갈수록 길어지며 법관들의 판결문 작성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상소(항소·상고)가 제기된 사건에 한해 법관이 판결 이유를 사후 보충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10일 사법정책연구원이 최근 펴낸 ‘형사판결서 적정화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법관 37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형사재판부의 업무량과 부담이 다른 사무분담보다 많거나 매우 많다고 답한 비율은 80.5%였다. 형사재판 업무에서 ‘판결문 작성’이 차지하는 부담이 많거나 매우 많다고 응답한 비율은 72.1%로, 부담감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작성되는 형사판결서 기재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 묻는 질문에 ‘길다’ 또는 ‘매우 길다’고 응답한 비율은 79.6%였다.

 

사법부는 2014년 ‘형사판결서 작성방식 적정화 예규’를 시행해 형사사건 1심 판결문 분량을 적정한 선으로 바꾸고자 했다. 결론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쟁점에 대한 판단만 간략히 밝히고 유무죄의 이유를 장황하지 않게 쓰도록 한 게 핵심이다.

 

하지만 예규 시행 이후에도 법원 안에서는 당사자의 주장과 이에 대한 판단, 증거의 신빙성 판단, 양형 이유 등을 상세하게 기재하는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수행한 사법정책연구원 정우용 연구위원(판사)은 법관들이 상급심의 평가와 당사자의 불만 등을 우려해 판결서에 최대한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최근 들어 정치·사회적으로 중대하고 복잡한 사건 다수가 법원에서 다뤄지며 법관들의 판결문 작성 업무가 과중해졌다는 분석도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 무기징역이 선고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판결문의 분량은 총 1206쪽이다. 2024년 무죄 선고가 나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1심 판결문 분량은 3160쪽에 달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정우용 연구위원(판사)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법관이 대량의 형사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형사판결서 작성에 지나친 노력과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한정된 사법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재판지연을 초래해 신속한 재판의 원칙을 저해할 염려가 있다”고 짚었다.

 

다만 형사판결문 적정화를 단순히 ‘판결서를 짧게 쓰는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복잡하고 쟁점이 많은 사건에는 충분한 판결 이유를 제시하되, 다툼이 적은 사건에는 작성 부담을 줄이는 등 사건 특성에 따라 사법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 전경. 연합뉴스

정 연구위원은 ‘판결 이유 보충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1심 법원이 판결을 선고할 때에는 범죄사실, 증거의 요지, 법령의 적용 등 형사소송법상 법정기재사항을 중심으로 간결하게 판결서를 작성하고, 이후 적법한 상소가 제기되면 일정 기간 내 별도의 서면으로 판결 이유를 보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모든 사건의 판결서를 처음부터 상세하게 작성하기보다 실제 불복이 이뤄진 사건에 재판부의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자백하고 상소하지 않는 사건 등에서는 공판조서로 판결서를 갈음하는 ‘조서판결’ 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아울러 국민참여재판 판결문은 이유 기재를 간소화하고, 증거의 요지와 법령 적용, 양형 이유 등의 기재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