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49회) 바스크의 정체성을 담은 붉은 와인, 리오하 알라베사

스페인은 세계적인 와인 생산국가이다. 포도밭 면적으로 따지면 세계 1위로, 약 110만 ha 이상의 포도 재배 면적을 보유하고 있다. 와인 생산량 역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전국에는 4000개가 넘는 와이너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풍부한 와인 역사를 가진 스페인에서도 바스크 지방의 리오하 알라베사(Rioja Alavesa)​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에브로강과 칸타브리아산맥 사이에 자리한 이 지역은 뛰어난 자연환경과 오랜 양조 전통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와인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바스크의 자연환경과 전통, 그리고 장인정신이 어우러져 탄생한 리오하 알라베사는 깊은 풍미와 품격을 지닌 와인으로 평가받으며, 스페인 와인의 다양성과 매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산지이다.

한국 와인 박람회에 참석한 리오하 알라베사 와인 관계자들. 필자 제공

리오하 알라베사 와인이라고 하면 레드 와인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레드 와인이 생산량 대부분을 차지하며, 대부분 와인은 템프라니요 품종으로 만든다. 밝고 선명한 색상,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향, 풍부한 과일 풍미가 특징이다. 우수한 품질의 포도를 중세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양조 방식과 새로운 기술을 조화롭게 결합해 생산하고 있다.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온 와이너리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아방가르드 예술 작품인 와이너리도 주요 관광코스로 알려져 있는데,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가 만든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가 가장 대표적이다.

보데가스 롤리 카사도 와이너리 전경. BODEGAS LOLI CASADO 제공

물론 이렇게 화려하게 설계된 현대식 와이너리도 유명하지만,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티크 와이너리들이 있다. 몇 군데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보데가스 롤리 카사도(BODEGAS LOLI CASADO)이다. 이 와이너리에서는 3대째 전통방식으로 제조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먼저 모든 포도를 사람의 손으로 재배하고 수확한다. 그리고 수확한 포도는 압착하지 않고 포도알 그대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석조 지하 저장고에 넣어 보관한다. 어느 정도 숙성이 되면 일반적인 와인 제조과정처럼 오크통에 와인을 옮겨 나머지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친다.

보데가스 데 라 마르케사 와이너리 전경. BODEGAS DE LA MARQUESA 제공

두 번째 소개하고 싶은 곳은 보데가스 데 라 마르케사(BODEGAS DE LA MARQUESA)이다. 이 지역 귀족이었던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솔라노 후작(侯爵)이 1880년에 설립하였고, 전통적인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양조 방식을 따랐다. 일찌감치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는데,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 와이너리는 지금 설립자의 후손이 5대째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생산방식을 현대화하긴 했지만, 설립 당시의 와인 제조법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발데마르 와이너리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모습. Valdemar Bodega y Viñedos 제공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발데마르(Valdemar) 와이너리이다. 137년째 발데마르 가문이 운영하는 이곳은 가족 규모의 부티크 와인으로 시작하였다. 전통적인 방식의 유기농 포도 재배를 고집하고 있고, 지금은 미국 워싱턴 주에도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발데마르는 리오하 와인의 전통 안에서 끊임없는 실험과 혁신을 시도하는 와이너리로 잘 알려져 있다. 오크통에서 1차 발효를 진행한 화이트 와인을 선보이는 등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리오하 와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