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밀면 먹을까? 기장밀면 먹을까?…70년 역사 품은 부산 ‘밀면’ [FOOD+]

메밀 대신 밀가루로 만든 냉면에서 출발
산업화 거치며 부산식으로 진화, 현재는 세계인 찾는 외식 메뉴로 자리매김

여름철 부산을 찾은 관광객에게 “뭐 먹을까?”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밀면’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살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육수에 쫄깃한 면발, 매콤달콤한 양념장을 곁들인 밀면은 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1950년 피란길의 눈물겨운 상상력이 만든 밀면은 오늘날 어떻게 전국의 입맛을 사로잡게 됐을까.

 

밀면. 사진 = 세계일보

◆ 피란민들이 부산에서 이어간 ‘고향의 맛’

 

12일  부산광역시 임시수도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밀면의 역사는 한국전쟁과 피란민의 부산 정착, 전후 식량 사정, 밀가루 공급 확대 등 당시 사회·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밀면의 출발점은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 지역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이 가운데 냉면을 즐겨 먹던 실향민들은 부산에 정착한 뒤 고향에서 먹던 냉면을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부산에서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가루나 감자전분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쟁 직후 식량 사정이 열악했던 데다 냉면을 만들기 위한 재료 역시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대체재로 활용된 것이 밀가루였다. 전후 미국의 원조물자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부산의 서민들에게 밀가루는 비교적 구하기 쉬운 식재료였다. 일부 냉면집들이 메밀 대신 밀가루를 활용해 면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즐겨 찾는 ‘부산식 밀면’ 탄생의 계기가 됐다. 

 

부산광역시 임시수도기념관 홈페이지 캡처

◆ 1970년대 ‘부산식 밀면’으로 정착

 

밀가루를 활용한 면은 기존 냉면과 식감과 맛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당시 부산의 생활상과 맞물리며 빠르게 자리 잡았다. 식량이 부족했던 전후 시기 밀가루는 국수와 빵, 수제비 등 다양한 음식에 활용됐고, 밀면 역시 비교적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서민 음식으로 소비됐다. 

 

이후 부산이 산업도시로 성장하면서 밀면 역시 부산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변화했다. 

 

부산시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에는 부산진구의 개금밀면과 동의대 인근 가야밀면 등이 등장하면서 밀면 문화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기존의 냉면 계열 밀면에서 벗어나 밀가루를 활용한 면과 진한 육수, 양념 등을 앞세운 부산식 밀면이 확산됐다.

 

이 시점부터 밀면은 ‘피란민이 먹던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먹는 일상적인 음식이 됐고, 세대를 거치며 각 식당마다 독특한 육수와 양념, 면발을 개발하면서 지금의 다양한 밀면 문화가 만들어졌다.

 

부산시는 밀면에 대해 “부산사람의 정서에 부합하는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시절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었던 음식이 시간이 지나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 서민 음식에서 관광객이 찾는 ‘부산의 맛’으로

 

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밀면은 부산을 넘어 전국으로 소비 범위를 넓히고 있다. 부산식 밀면을 표방하는 외식업체가 다른 지역으로 확장하고, 지역 음식점에서도 여름철 메뉴로 밀면을 선보이면서 부산의 향토음식에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소비 영역이 확대됐다.

 

부산에서는 여름철이면 밀면 전문점에 지역 주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밀면은 돼지국밥 등과 함께 대표적인 지역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밀면의 대중화에는 음식 자체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다. 차가운 육수와 면을 함께 먹는 물밀면은 여름철 수요에 적합하고, 비빔밀면은 매콤달콤한 양념을 더해 또 다른 맛을 낸다. 밀가루를 활용한 면을 사용한다는 점도 냉면과 차별화되는 특징이다.

 

밀면은 부산의 관광 콘텐츠로도 활용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고향의 냉면을 대신해 만들어 먹던 음식이 70여년 동안 지역 음식으로 정착했고, 현재는 부산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 물밀면 vs 비빔밀면, 지금은 식당마다 개성도 제각각

 

오늘날 밀면은 크게 물밀면과 비빔밀면으로 나뉜다. 물밀면은 차갑게 식힌 육수에 면을 말아 먹는 방식으로, 육수의 맛과 면의 식감을 비교적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육수는 업소에 따라 고기 육수나 동치미 등을 활용하며, 식초와 겨자 등을 곁들여 맛을 조절하기도 한다.

 

비빔밀면은 육수 대신 고추장과 고춧가루 등을 활용한 양념에 면을 비벼 먹는다.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 맛이 강해 물밀면보다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 양념에 식초나 겨자를 더하거나 육수를 소량 곁들여 먹는 경우도 있다.

 

같은 밀면이라도 육수와 양념, 면의 배합은 업소마다 차이가 있다. 부산에서는 이 같은 차이가 각 밀면집의 개성을 만들면서 지역 음식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