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침체되는 최악의 경제상황 ‘스태그플레이션’. 먼저 말하자면 스태그플레이션은 자주 오는 재난은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비교적 성숙해진 지난 100년간 3∼4차례 발생했을 정도로 드문 일이죠.
하지만 전 세계 주요 경제국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하고 ‘신호’가 잡히면 대응에 나섭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이후라면 사실상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을 하자니 경기침체가 발생하고, 경기 활성화를 위해 돈을 풀자니 인플레이션을 촉진하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전에 경제를 안정화 하는게 일종의 커다란 ‘리스크 관리’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시그널이 나오는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 ‘대처 원리’…기준금리 인상
스태그플레이션의 신호는 보통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에서 가시화됩니다. 경기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데, 예상할 수 없는 큰 변수로 물가가 치솟으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물가가 상승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소비가 줄어드는 구조로 이어지기도 하죠.
즉, 경기침체는 서서히 차가워지는 현상인 반면, 인플레이션은 즉각 뜨거워지는 현상입니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부터 잡으려고 합니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가장 원론적인 방법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방법입니다. 지난달 신현송 총재가 이끄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5%에서 2.75%로 25bp(1bp=0.01%포인트) 올린 것이 이 같은 맥락입니다.
지난 2024년부터 소폭 하향세였던 기준금리는 올해들어 다시 인상 기조로 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뿐만 아니라 유로존도 기준금리를 지난해 2.0%에서 올해 2.25%로 올렸죠. ‘제로금리’로 알려진 일본 역시 기준금리를 1.0%로 상향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경기활성화를 명분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강하게 압박하기 때문에 연방준비제도(Fed)에서 아직 금리를 인상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금리를 결정하는 연준의 FOMC에서 금리인상의 의견이 강해지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이 최선의 스태그플레이션 예방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높였다가 안그래도 가라앉고 있는 경기가 겉잡을 수 없이 하강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구조는 숫자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차주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평균은 1.9%포인트 상승합니다. 이는 고스란히 이자비용의 증가로 이어지죠. 이자비용이 커진 소비자들은 당연히 소비를 줄이게 됩니다. 금리 1%포인트 상승하면 소비는 약 0.46% 감소한다고 합니다. 소비가 줄어들면 자영업자 비율이 한국 경제에서 악영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특히 국내에서 기준금리를 쉽게 올리기 어려운 것은 바로 누적된 가계부채와 자영업자 대출 문제가 얽혀있습니다. 올해 1분기 기준 누적 가계부채는 약 19993조원으로 2000조원에 육박합니다. 가계부채는 꾸준히 상승해왔죠. 만약 기준금리가 0.25% 올라가면 전체 가계부채에서 발생하는 이자비용은 무려 3조2000억원이 추가로 발생합니다.
자영업자 대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영업자 대출규모도 꾸준히 늘어 어느덧 1100조원을 육박하고 있죠. KDI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중소기업의 ‘영업이익 대비 이자비용’ 비중은 8.45%포인트 증가합니다.
이미 중소기업은 영업이익의 약 63%를 이자비용으로 쓰고 있죠. 쉽게 말하면 기업이 100만원의 영업이익을 남겼어도, 금리 1%포인트 인상 후에는 72만원을 이자로 내고 있다는 의미죠.
◆물가 잡겠다고 섣불리 금리 올리면…‘잃어버린 20년’
이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해 기준금리를 섣불리 올렸다가 물가는 잡았지만 장기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처럼요.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가 단순히 환율 안정화 때문에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건 ‘닭 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는 꼴’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과 같죠.
1980년대 일본의 증시인 닛케이225 지수와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일본의 버블 경제’ 시절이었죠.
일본의 버블 경제는 한 순간에 터진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상하는 ‘플라자합의’, 버블의 한계 봉착, 소비세 신설, 기준금리 변동 등 다양한 요인으로 버블이 천천히 터진 것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기준금리가 1990년 8월 6.0%까지 올라간게 버블 붕괴에 큰 몫을 한 건 부인하기 어렵죠.
결과적으로 말하면 일본은 아직도 ‘경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들어 닛케이 지수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버블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는 등 상승세에 있지만, 국민 소득은 그렇지 못하죠.
올해 일본의 1인당 GDP 전망치는 3만5700달러입니다. 한국의 올해 전망치가 3만9164달러죠.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하다니 살고 볼일입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었죠.
◆역사로 보는 스태그플레이션 극복 사례
그렇다고 ‘스태그플레이션은 노답’이라고 손 놓고 있어야 할까요. 그래도 정부인데 뭐라도 해야겠죠. 역사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사례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을 전 세계에 알렸던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치솟으면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동반됐죠.
당시 폴 볼커 Fed 의장은 강력한 긴축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돌파하려 했습니다. 그 때 미국의 금리는 한 때 20% 안팎까지 올라갔죠. 다시 볼 수 없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때문에 미국은 1980년대초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었습니다. 건설·제조업·농업 등이 특히 타격을 받으면서 실업률도 10%를 넘어섰고요. 결국 1984년 ‘레이거노믹스’로 알려진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 들어서 경기침체에서 호황으로의 반전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했죠.
반면 기준금리 변동 타이밍을 잘못 계산해 실패한 사례도 있습니다. 유로존 중앙은행(ECB)는 2008년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해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침체가 오면서 곧바로 금리를 내려야 했습니다.
ECB는 2011년 남유럽발 재정위기가 발생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스태그플레이션의 시그널이 나타자나, 두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했습니다. 하지만 물가는 기대만큼 잡히지 않았고, 회복의 기미를 보이던 유로존 경기는 다시 꺾이면서 같은 해 금리를 다시 원상복구 했죠. 즉, 잘못된 판단으로 금리를 흔들기만 하면서 경기에 잘못된 영향만 미친 꼴입니다.
만약 오늘날 전 세계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요. 원리적으로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서울시내에서 1만원짜리 점심식사를 보기 힘든 현실입니다. 한국의 식료품 물가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높죠.
하지만 물가를 잡겠다고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렸다가 가계부채와 자영업 대출이 터지고, 일본처럼 ‘잃어버린 OO년’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지는 오늘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