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칼바람이 대한민국을 할퀴던 시절, 대다수 기업은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을 헐값에 내다 팔기 급급했다. 모두가 생존의 공포에 떨며 움츠러들 때, 한 남자는 강남 압구정동 대로변의 노른자위 땅을 조용히 사들였다. 20억원 중반대라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훗날 K-팝 제국의 수장이 된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의 이야기다. 가수와 엔터테인먼트 개척자로 이름을 알리던 그가 부동산 시장에서 거둔 성취는 대중문화 분야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식견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오늘날 그 땅의 가치는 1000억원대를 호가하며, 대한민국 부동산 재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이 보유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3필지, 총 1741.6㎡(약 526.8평)의 실체는 단순한 지가 상승 그 이상이다. 1999년 매입 당시 20억원 중반대였던 이 토지는 현재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인 마이바흐 전용 전시장이 들어서며 그 위상을 증명하고 있다. HS효성더클래스가 2025년 신축한 이 건물은 압구정 대로변과 청담동 명품거리를 잇는 핵심 요충지에 자리 잡았다.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이 부지의 시세는 1000억원 수준에 육박한다. 그가 보유한 땅은 과거 SM 사옥과 연립주택 등이 혼재된 형태였으나, 2005년 인근 부지를 추가로 매입하며 토지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2014년 공개된 연예계 빌딩 부자 순위에서 그가 1위를 차지했던 배경에는 바로 이 ‘압구정 프로젝트’가 있었다. 외환위기 속에서 매입한 땅이 30년의 세월을 거쳐 대한민국 최고 부촌의 상징적 랜드마크로 변모한 것이다.
이수만의 부동산 경영 전략은 그가 과거 K-POP 시장을 개척하며 주창했던 ‘한류 3단계론’과 닮아 있다. 한류 1단계인 아시아 시장 직접 진출, 2단계인 현지인 멤버 영입을 거쳐 최종적으로 현지 기업과의 합작 및 인프라 구축을 도모하는 이 전략은, 해외 시장을 단계별로 공략하듯 자산 가치를 순차적으로 끌어올린 그의 행보와 일치한다. 그는 1990년대 후반 H.O.T.를 필두로 해외 진출의 활로를 뚫었듯, 압구정 부지에 SM 사옥을 세워 거점을 구축하고 회사가 성수동으로 이전한 뒤에도 공간의 잠재력을 방치하지 않았다.
대신 ‘마이바흐’라는 세계 최고급 슈퍼카 브랜드에 전시 공간을 내어주었다. HS효성더클래스와 임대차 계약을 맺으며 이 전 회장은 200억원대의 대규모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히 건물을 빌려주는 차원을 넘어, 부촌의 입지를 활용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창출하는 프로듀싱 감각을 보여준다. 등기부등본상 설정된 280억원 상당의 근저당권은 이 프로젝트의 규모와 수익성을 방증하는 수치다.
그의 인생 궤적은 늘 시대보다 앞서 나갔다. 밴드 ‘4월과 5월’의 멤버로 데뷔해 당대 인기 라디오 DJ들과 함께 ‘마삼트리오(말 얼굴형의 가수 3인방)’로 불리며 예능감을 뽐내던 시절을 거쳐, 미국 유학 당시 MTV와 비주얼 음악의 시대를 예견한 통찰력은 훗날 그가 경영의 본질을 꿰뚫는 바탕이 되었다. SM을 창업해 아이돌 1세대를 이끌고,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 지금의 K-팝 위상을 만든 것은 철저한 시스템과 기획의 승리였다.
이제 그는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 블루밍그레이스와 A2O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마치 제 음악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낀다”는 그의 언급처럼, 압구정 땅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경제적 토대다. 그가 IMF 때 사들인 이 부지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국가적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이수만이 보여준 부동산 철학의 핵심은 입지의 잠재력과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눈에 있다. 2000년대 초반 한류를 통해 해외 시장을 개척했던 그 혜안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압구정동 대로변의 슈퍼카 전시장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시장의 변화를 사전에 읽고 공간에 독보적인 프리미엄을 부여한 결과가 곧 1000억원대의 가치로 증명된 셈이다.
결국 압구정의 이 부지는 그가 평생에 걸쳐 증명해온 안목과 전략이 투영된 결정체다. 국가적 위기 속에서 매입한 땅 한 조각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의 상징으로 거듭나기까지, 그는 K-팝이라는 거대한 산업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자신의 자산 가치를 정교하게 다듬어냈다. 7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그의 행보와 함께, 압구정 땅이 지닌 가치의 향방이 어디로 향할지 시장이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