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의회, 중동 국가들 중 처음으로 ‘사형제 폐지’ 의결

‘강제 노역 수반한 무기징역’으로 대체

레바논 의회가 표결 끝에 사형제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내각의 동의를 거쳐 조지프 아운 대통령의 서명이 이뤄지면 레바논은 중동 지역에서 사형 집행을 법으로 금지한 첫번쨰 국가가 된다.

지난 2013년 10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인권 운동가와 시민들이 모여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11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12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레바논 의회는 이날 사형제 폐지안를 표결에 붙였다. 친(親)이란 이슬람 무장 정파 헤즈볼라 세력의 영향을 받는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졌으나, 원내 과반 의원들의 찬성으로 사형 폐지안은 가결됐다. 레바논 중앙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헤즈볼라는 지금도 이스라엘과 교전 중이며, 반역차 처단 등을 위해 사형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레바논은 사형제가 존치되고 있지만 2004년 이후 20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선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인권 단체 등에 따르면 레바논에는 사형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사형수가 최소 78명 있다.

 

앞서 의회의 사형제 폐지 결단에 지지 의사를 밝힌 레바논 정부는 기존의 사형을 ‘강제 노동이 수반되는 무기징역’으로 대체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강제 노역을 부과할 것인지 등 세부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사형제 폐지 움직임이 국제사회의 대세라고는 하나 중동 지역만큼은 ‘무풍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요르단 역시 2017년 이후 중단한 사형 집행을 올해 6월 재개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의회가 사형 집행이 가능한 요건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승인하는 등 아예 ‘역주행’에 돌입했다.

11일(현지시간) 레바논 의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사형제 존폐 여부에 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총 128석인 레바논 의회는 이날 표결 끝에 과반 다수의 찬성으로 사형제 폐지안을 가결했다. EPA연합뉴스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의하면 2025년 한 해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 17개국에서 총 2707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는 1981년 이후 40여년 만에 가장 많은 숫자다. 그나마 사형을 집행하면서도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중국, 북한, 베트남 등 국가들의 집계는 빠져 있다.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선 제9회 ‘사형 반대 세계 총회’(World Congress Against the Death Penalty)가 열렸다. 총회 연설자로 나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아직도 세계적으로 2만5000명 넘는 사람들이 사형 확정 선고를 받고서 ‘언제 집행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각국 시민사회, 비정부기구(NGO), 인권 옹호자들을 향해 “사형 폐지 운동의 원동력인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사형제를 끝장낼 수 없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