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어째서 더 많은 공장인가

AI 발달로 반도체 수요 늘어나
미세화 한계에 공장 증설 불가피
무어의 법칙 기세는 예전만 못해
무리한 투자 땐 리스크 커질 것

반도체 산업은 지난 40년간 언제나 첨단 산업이었다. 인간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회로 패턴을 웨이퍼라는 얇은 판에 새겨 넣으면, 백과사전 수백만 장의 내용을 저장할 수 있는 반도체가 되기도 하고 인공지능(AI) 구동에 핵심인 연산 반도체가 되기도 한다. 이런 어려운 기술이기에 반도체 뉴스는 이해할 수 없는 용어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반도체 관련 뉴스는 조금 다르다. 공장, 전력, 용수 등 다른 산업에서도 볼 수 있는 용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반도체 수요는 컴퓨터, 스마트폰 등 새로운 정보기술(IT)이 등장할 때마다 폭증했으며, 지금은 AI 기술이 반도체 수요를 이끌고 있다. AI 기술은 기존 IT와는 달리 구동에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다. 특히 AI는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를 매우 많이 필요로 한다. 생산을 늘리려면 공장이 더 커져야 하니, 공장을 늘려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절반의 설명에 불과하다. 과거 새 IT가 등장했을 때도 반도체 수요가 폭증했는데, 당시에는 이 정도로 증산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정인성 작가

여기서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가 등장한다. 반도체 미세화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핵심은 미세화이다. 미세화 기술을 발전시켜 기존보다 두 배 미세한 패턴을 웨이퍼 위에 그릴 수 있게 되면, 동일한 웨이퍼에서 두 배 더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동일한 면적을 가진 공장의 생산성이 두 배가 되는 것이다. 미세화의 이익이 크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은 공장의 크기를 늘리기보다는, 미세화 기술을 발전시키고 공장 내부에 더 비싼 장비를 도입하는 형태로 산업이 발전해왔다. 이런 방식을 통해 반도체 산업은 2년마다 대략 두 배 정도의 생산성 향상을 매번 달성해 왔다. 이를 무어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무어의 법칙의 기세는 예전 같지 않다. 최근 반도체 뉴스를 보면 ‘전 세대 대비 20% 생산성 향상’과 같은 문구가 눈에 띈다. 과거라면 100%(2배) 생산성 향상을 이뤘을 첨단 공정의 반도체가 이제 20% 정도의 생산성 향상밖에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공장의 생산성이 20% 높아지는 것은 매우 큰 성과지만, IT 업계는 2년에 두 배씩 늘던 반도체 생산성에 익숙해져 있다. 부족한 80%는 새로운 공장으로 채워야 한다. 이것이 공장 증설 붐이 일어난 또 다른 이유이다.

결국 반도체 공장 건설 붐은 AI 반도체 수요 폭증이라는 대호재를 맞이한 상황에서 기술적 해결책이 마땅치 않아서 채택된 차선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변화로 인해 반도체 투자 결정은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는 큰 리스크를 동반한다. 과거였다면 예상치 못한 불황이나 버블 붕괴 등으로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더라도 기존 건물 내의 장비 투자만 늦추면 되었지만, 이젠 수많은 공장과 공장 내에 배치된 수조원대의 장비가 모두 손실로 이어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해 더 얇아지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도 같다.

이런 상황이기에, 반도체 기업의 이익이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함부로 전제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의 대고객인 AI 회사조차 기술개발의 성공 실패 유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 외부의 제3자가 이를 100% 정확히 예측할 방법은 없다. 만약 이런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국가 정책이나 기업의 투자 결정이 수립되면, 불황이 발생했을 때 발생할 경제·사회적 여파 역시 반도체 회사의 규모와 비례해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클 수밖에 없다. AI 혁명, 이란전, 관세전쟁 등 하나만 발생해도 대응하기 힘든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기업의 정확한 의사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니 낙관론과 특이점 도래를 주장하는 근거가 부족한 글을 기반으로 회사들을 보채기보다는,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반도체 회사가 고객들과의 협력 결과를 바탕으로 스스로 선택하게 두자.

 

정인성 작가